며칠 전 영화'국제시장'을 보았다.
우리 나이 또래 사람들 이라면 대부분이 공감할 수있는,
당시의 치열했던 삶의 현장이 적라라 하게 조명된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다
영화 내용이 슬프서라기 보다 어쩌면 나의 자화상 이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감상적이 되었고 눈시울이 적셔졌다.
'옛 날' 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하다.
겪을 때는 고통스러웠던 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픈 강도가 덜하다
어떤 때는 좋았던 시절처럼 느꺼지기도 하고 아련한 향수조차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60여년 전 그 시절은 지금 느끼는 것 처럼 정말로 좋은 시절 이었을까?!
나는 일본 경도(교오또)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해방을 맞으면서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형과 함께 귀국선에 올랐다
나는 현해탄에서 6500 여명 전원의 재일동포가 수장되었던 그 귀국선( '우루시마' 호)
바로 앞의 귀국선을 타서 아슬아슬 하게 목숨을 건졌던 재일동포 출신이다.
그런데 나는 당시 목숨을 건진 것이 천운이었다고 마냥 좋아 할수 만 없었던 것이
그로부터 나에게는 모진 세월이 예비되어 있었으니
차라리 '우루시마' 호와 함께 현해탄에서 수장되었었 더라면 하고
그 후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어쨋든 우리는 진해를 거쳐 마산에 정착해서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었는데
그로부터 불과 3년 후인 초등학교 3학년 때에 6.25가 터졌었고
8월 초순 경에는 인민군이 낙동강 방어선 까지 일시 돌파해서
마산에서 20 여리에 불과한 진동리 까지 진출하자 우리 집도 마침내
피난 준비를 서둘렀었다. 그런데 마산에서는 더 이상 피난 갈 곳이 없었다.
기껒해서 뒷 산에 일제시대에 파놓았던 방공호로 숨어 들어가는 것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굴 속에서 며칠을 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었다.
철 모르는 어린 우리들은 관솔 불을 들고 컴컴한 굴속으로 들어가는것이
스릴도 있었고 일면 재미도 있었지만 당시 부모님들의 불안과 걱정은 오죽 했었을까
하기사 피난도 가 보지 않은 우리가 엄동 설한에서 1.4 후퇴를 해서
생면부지의 남한 땅에 내려와 생존에 내몰린 이들 이북 피난민들에 어찌 견줄 수가 있으랴..
그러나 본토 사람인 우리 또한 그들 수많은 이북 피난민들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다.
당시 집 앞에 까지 몰려 들어온 피난민들을 집 안으로 들이고 양식과 옷가지를 내주는 등
없는 가운데 함께 나누려니 우리도 양식과 땔감이 떨어져 힘들기는 마찬가지 였었다.
그런 가운데 우리 집안도 가세가 기울어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자 마침내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나는 53년도 초등학교 6학년을 부산에서 다녔고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하자 가정 형편 때문에 더 이상 진학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부터 나는 꿈을 잃어 버린채 온 종일 국제시장을 방황하면서 사춘기 시절을 보냈엇다
나의 어머니는 국제시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갈치 시장 장 바닥에서
난장을 벌여놓고 하루 하루 생존에 목숨을 걸고 있었으니 자식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관심울 가질만한 여유가 어디 있었으랴..
나는 국제시장 헌 책방 가게를 초입부터 끝까지 훑으면서 참고서며 소설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시장 통 아래 위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어떤 때는 영화에서 처럼 가게 안 주인 끼리 머리 끄댕이를 잡고 장바닥에 나 뒹굴면서
싸움판을 벌이는 구경을 하기도 했었고 어떤 때는 이북 피란민들이 리어카에
시계며 라이터며 껌 등 잡동사니를 진열해 놓고 팔다가 그 앞 가게 주인으로 부터
물세례를 받아 도망다니는 광경을 보고 재미있어 하면서
어둠이 내려 앉고서야 아무도 없는 빈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꿈을 잃어 버린 사춘기 소년이 그렇게 방황하면서 암담한 세월을 보냈던 그 때 그 시절...
참으로 모진 세월을 겪었던 나의, 우리 세대의 자화상 이기도 했다...
…15-01-12 18:01
아빠의 멋쥔 감상문 잘 읽어봤네요.. 아빠글 읽고보니 저도 시간되면 한번 가서 보고싶네용..한가지 아쉬운건 아빠의 "옛날"이라는 것에대한 정의 랄까요? 아무리 힘들었던 또는 멋졌던..고통스러웠던 또는 영광스러웠던.."옛날"은 말그대로 과거예요..꼭 60여년전으로 돌아가지않아도.."현재"를 제외한건 모두 과거라고 볼수있죠..지금 이순간을 제외하고는..5분전도 과거이고, 몇시간전도, 어제도,일주일전도,모두 "과거"라는 정의 속에 포함되지요..따라서 다시는 절대로 되돌아올수없다는 평범한 결론을 우리모두는 늘 잘 알고있으면서도..대부분의 사람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또는 그리워하며 현재를 놓치고..그런 현재들이 모여서 다시 과거가 되고...그런일상들이 반복되면..그사람은 몸은 현재에 있으나 생각은 다른공간에 저 중점을 둔,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시간속에 존재하는 인간으로서..현재나 미래를 계획하는데 에너지를 많이 쏟지못하게 되는수가 많죠..
가끔씩 정겨운 옛친구/친지를 만나거나 하면서 함께 공유할수 있는 추억을 나누며 정겨운 시간을 갖는다거나 하는 차원에서라면 모를까..설사 그렇다 한들..그것이 현재 그사람의 모습에 도움이 안된다면..그 추억조차도 별로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두눈은 사람의 뒷통수가 아니아 앞얼굴에 달렸죠..앞만 바라보고 진취적으로 ,생산적인 모습으로 자기현재를 즐기면서 미래를 그려나가기에도 부족한 요즘이예요..나이 여하에 막론하고..사람은 늘 앞을보면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해요..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고..일주일뒤를 기대하고..1년후를 기대하고..단 하루를 살던..10년 ,20년 50년을 살던 자기내면안에 자신만이 느낄수있는 진정한 행복과 의미를 느끼면서 살아가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대한 회상자체가 나쁜것은 아니지만 그로인해서 그사람의 현재의 모습이..존재의 의미가 덜해진다면..그 회상으로 인해 지금 현재의 모습이 방해를 받는다거나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다면,또는 과거의 회상이 그 사람을 센티멘탈리즘으로 빠지게 만든다면 그 과거는 별로 큰 가치가 없는 과거라고 생각합니다.사람의 뇌는 오래도록 슬픔을 느끼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요..감정을 느끼는 중추가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감성주의 에 빠지는것은 아주 위험하죠.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중에 하나가 "그때 내가 그랬더라면..그때 내가 거길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그때 내가 그사람을 만났더라면..그때 내가 죽었더라면..다치지 않았더라면..등등등"이라고 합니다..그 생각자체가 얼마나 부정적이고 무가치한 생각들이고 쓸데없는 시간낭비인지 알면서도 말이죠..
사람들이 "용서"하면 흔히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한다라는 차원에서 생각들을 많이 하곤하는데..진정한 용서란 먼저 자신안에서..자신에 대한 용서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하요..과거의 자신,그때의 실수,그때의 어리석었던 모습들,그때의 분노와 슬픔.,안타까움,부당한 대우..등등..그런것들을 안고 살아가다보면 현재에 충실하는 면에 방해를 받을수 있어요..그리고 앞으로 전진하기에도 걸림돌이 될수도 있구요..같은 실수를 반복할수있으리라는것에대한 두려움 등등에 시달리기도하고..과거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 일단 첫번째 해야할 일이예요..-진정으로 의미있는 현재를 꾸려나가기위한 필수조건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놔버리고.자신의 모든 과거의 실수와 상황들과 완전 결별을 하고 ..특히나 과거에 자신이 가질수 /할수있었던것에대한 가능성에대한 완전 포기.(예를 들어" 내가 그때 집안형편이 되어서 그 학교를 갔었다면 어떻게 되었었을까.."등등)완전결별선언을 하고..현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즐기면서 ,의미있게 살아갈까를 고민하셨음 좋겠네요..
…15-02-06 13:37
효정아! 과거를 잊으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는 공유하는 기억으로 더욱 돈독해지곤 한단다.
이런저런 기억들은 미련과 여운을 동반하지만 그리움으로 다가서고,
기억을 바라보는 시각은 과거에 한정된 기억자체로 만 저장되기 보다는
현재를 유지하는 힘이 되기도 한단다
완전히 지우지 못한 과거의 흔적이 때로 회한과 상처로 남는다 하여도
기억은 현재 자신의 동일성을 확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란다.
속 깊은 내 딸! 좋은 댓글 올려주어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