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8-12 11:26
"On China"(중국 이야기 1)
 글쓴이 : …
조회 : 226  
헨리 키신저 박사의 "On China"(중국 이야기)를 최근에사 겨우 완독을 했다.
이 책은 중국 전문가인 키신저 박사가 접촉했던, 모택동, 주은래 부터 현재의 후진타오,원자바오에 이르기 까지의
역대 중국의 지도자 및 고위관리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과 그들의 사고,그리고 그동안의 미국의 대 중국 외교정책의 전개 과정과 향후의 방향에 대하여 자전형식으로 서술한 내용으로서 이는 우리 나라의 정치 지도자 들이나
외교일선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한 번 씩은 꼭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중에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진로와 관련,시사하는 대목이 있어 그 중 일부를 앞서 게제한 '청사소고'(淸史小考)와 같은 범주에 묶어 여기에 게재해 올리고저 한다.

"...중국 내 몇 명을 포함하여 상당수의 해설자들은 21세기에 미국과 중국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전조(前兆)로서
20세기 독일과 영국의 경쟁이라는 예를 다시 찾아보았다.
중국은 독일제국의 경우와 같이 재부상하고 있는 대륙의 세력이다.
반면 미국은 영국처럼 대륙에 깊은 유대관계를 가지긴 했지만 주로는 해양 세력이다.
중국은 그 역사의 전반에 걸쳐 주변의 다른 모든 국가보다는 더 강력했지만, 그들이 합세하면 중국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었고, 실제로 위협했다.
19세기 독일 통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모든 나라의 계산은 중국이 강력하고 통일된 국가로 다시 부상하면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된 것이다.

19세기 통일된 독일은 너무나 강해져서, 유럽 주요국들이 모두 힘을 합쳐 덤빈다면 독일도 커다란 위험에 처하겠지만 ,주변국들을 하나씩 격파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주변국들은 아무도 독일의 위험에 적절한 대응을 못했고 독일 제국 또한 피하지 않았다.
독일은 이미 유럽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지상군을 보유한 것도 모자라 대규모 해군까지 구축함으로써
영국의 해양 지배권에 도전장을 던졌다.따라서 유럽은 사실상 외교적 융통성이라곤 없는 양극 시스템으로
들어갔고, 외교 정책은 제로섬 게임이 되어 버렸다.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미국과 중국이 전략적 갈등 상황에 빠지게 되면,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과 비교할 만한
상황이 아시아에서 틀림없이 생길것이며, 서로 으르릉대는 블록이 형성되고
각 국은 다른 나라들의 영향력과 권한을 약화시키거나 적어도 제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1907년 영국 외무성 고위 관리 '에어 크로'는 유럽의 정치 구조와 독일의 부상에 관한 탁월한 분석을 글로 쓴 바
있다. 그가 제기 했던 핵심 질문, 오늘날에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그 질문은,1차 세계 대전을 초래한
위기가 독일의 부상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독일의 특정한 정책에 의한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 위기는 독일의 능력 때문이었나, 혹은 독일의 행동 때문이었나?
'크로' 의 결론은 독일이 무슨 목표를 세워 맹세를 하든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독일이 어떤 길을 추구하든 "할 수 있는 한 가장 강력한 해군을 건설하는 것이 독일에게는 현명한 일이
될 게 틀림없었다." 는 결론이었다
그리고 '크로'는 예상했다. 일단 독일이 해군력의 우위를 달성하고 나면,(독일의 의도와는 상관없이)그 자체가
영국에게는 객관적인 위협이며, 영제국의 존재와는 양립할 수 없게 될 터였으니까.
이는 "영국이 그에 관한 어떤 리스크도 안전하게 떠안을 수가 없는 사안" 이었다는 것이다.

런던은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가정 위에서 행동해야 했다.
적어도 독일이 영국에 맞서는 대규모 해군력을 구축하고 있는 한은 그랬다.
달리 말하면,1907년 이미 외교를 위한 여유는 없었으며.위기가 닥쳤을 때 누가 물러서느냐가 이슈였으며
그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 마다 전쟁을 거의 불가피했다.
그리고 세계 대전의 시점에 이르기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다.
(나는 이 글을 타이핑하고 있는 이 시점에도 중국의 최근 질주하고 있느 해군력 강화가
자꾸 오버랩되어 온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