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8-12 11:23
'도요토미 히데요시' 독후감
 글쓴이 : …
조회 : 518  
나는 요즘 일본의 한 역사학자(야마지 아이잔)가 쓴 "도요토미 히데요시" 라는 960 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을
읽느라 한 열흘 가까이 여기에 몰입해 있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조선정벌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 분량으로 포함되어 있어 여기에 그 일부분을
소개함으로서 오늘의 우리의 현실과 대비해 보는 시간을 잠시 가져 보고자 한다.

전반적으로 보면 당시 일본은 조선을 자기 나라와 견주어 볼 때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아주 허약한 소국으로
평가하고 있어 이러한 나라를 정벌하는 일은 매우 쉽게 생각하고 있었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당연시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먼저, 일본이 명나라에 제시한 화의 조약 내용 전문(일본 보관 역사자료 '다이코 기')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 대명의 현녀(황녀)을 일본의 후비로 삼게 할 것.
하나: 대명과 단절되었던 관선과 상선이 왕래 할 수 있도록 할것.
하나: 조선의 역심과 관계없이 대명에게 8도를 분할하고 그중 4도와 더불어 한양을 조선국왕에게 돌려주겠다.
하나: 4도는 이미 반환하였으니 인질로 조선 왕자와 대신 한두 명씩 일본으로 보낼 것.
하나: 조선 국왕의 권신은 누대에 걸쳐 이를 위반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쓸것.
6월 28일 히데요시 주인
이것을 명나라 사신에게 전하자 명나라 사신은 곧장 귀국길에 올랐고 명나라 천자가 이를 수락하자
왜병은 명나라와의 약속에 따라 모두 철병해서 부산을 비롯한 남해안 일대에 축성을 하면서
화의 내용이 준수되는가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조선이 왕자를 인질로 보내지 않고 하찮은 대신을 보낸데 대해서 히데요시가 분노하여 조선의
버릇을 고친다는 구실로 재침(정유재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위의 조약 내용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지만 당시 조선은 당사국 이면서도 조선이 요리되는
이 회담에 참석 자격을 상실 한채 명나라 사신에게 물어가면서 이 내용을 파악했을 정도이니 참으로 한심하고
통탄할 지경이다.
그리고 당시 명나라 에서는 "조선이 허약하여 왜를 막지 못하니 그 나라를 둘 또는 셋으로 나누어
왜를 막을 역량이 있는 자를 제후로 봉하고 땅을 나누어 중국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 는 등의 의논도
있었다고 하여 간담이 서늘해진 조선의 군신이 이를 막으려고 함으로서 화의 내용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면서
이 또한 정유재란의 구실로 삼고 있다.

정유재란이 끝난 것은 히데요시가 갑자기 사망하였기에 왜군이 본국의 지시에 따라 황급히 철수 한 것이지
만약 히데요시가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현재 우리나라의 전라도.경상도 지방이 지금 쯤 어떻게 되었을 것 인가를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의 현 상황은 이 때의 중국의 의도대로 되어 있는 형국이라고 하겠다.
위의 내용 대로 현재 북한이 중국의 울타리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탈북자 문제며 중국어선들의 횡포 등에 눈을 감고
제주 해군기지 문제 등 국가 안보 면에서는 결사 반대하는 이들이 마침내 이 나라의 통치 세력이
되었을 때 이 나라가 어떻게 될지..
주권국가로서 당당하게 나라를 건사하지 못하고 지금처럼 매사 중국의 눈치만 보며 사대를 한다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까..
역사의 뒤안 길로 되돌아가는 형국이 되어 가는 듯하여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무거워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