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8-11 11:38
일본 국호,백제의 피난 관료에 의해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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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2차 세게대전에서 패하기 전까지 단 한번도 왕통이 끊어진 적이 없는 "신의 나라" 라는 주장을 거듭하면서
주변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자신들의 우위를 강조해 왔었다.
이는 8세기 초에 씌어진 일본 정사 "일본서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이 책의 허구는 2차 대전 패전 후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속 속 밝혀지고 있다. 기존 일본고대사를 크게 바꿔놓은 연구서로 에가미 나이오 의 "기마민족 국가론"을 들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일본 고대사의 초기 천황이야기는 허구이며 10대 숭신천황부터가 실재했던 천황이며 특히 15대 응신천황은
한반도에서 온 기마민족의 후예이다.이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로 짐작되는 말 관련 유물 다수 발굴,삼국사기 "백제"편 기록,
광개토왕 비의 기록 등으로 알수 있다.
일본의 역사를 개관해 보면 일본은 선사시대 1만여 년간은 새끼무늬를 뜻하는 숭문(죠몬)시대라 불리우며 이후
기원전 3세기 부터 서기 3세기까지 5,6백년간은 쌀농사기인 미생(야요이)시대이다.
야요이 유물은 한반도의 농기구인 돌칼 등과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종종 일본 본토인과는 다른 장신의 인골도 발굴되어
철기, 쌀농사 문명을 가진 민족이 반도로 부터 온 것이 밝혀졌다.

기원 전 2세기경 진시황의 치세 시 만리장성,아방궁 축성등에 따른 유민이 한반도로 유입되었고 다시 이들의 영향을 받은 한반도의 민족이
일본으로 건너감으로써 일본에 한반도와 대륙의 문명이 개화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일본에도 진정한 역사시대가 시작되었는데 특히 5,6세기경부터 일본은 백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이 드러났다.
백제의 8대 성씨 중 공주지방 호족인 진(眞)씨 일가는 이 당시 대거 일본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으로 건너간 한민족들은 일본에 양조, 양잠,직조기술 등을 전파했다. 훈을 가지고 표기하는 일본어 방식 역시 백제인이 이룬 성과이다.
서기 660년 백제가 망하고 663년경 서해 백촌강 부근에서 나당연합군에 의해 일본선 400여척이 불에 탓다는 기록으로 보아
일본의 백제에대한 애정과 존경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일본의 국호도 ,율령,천황칭호 등과 함께 백제의 피난관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로써 일본은 역사가 필요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역사를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담았는데 이때 많은 날조와 왜곡이 시작됐다.
이 중 두드러진 날조 부분은 신라를 일본 야마도 정권시대의 조공국으로 묘사한 대목이다.
이는 당시 일본의 조정이 백제계 지배하에 있었고 그리고 자신들에게 문명을 전해준 백제를 무느뜨린 데 대한 적의라 하겠다.
또한 4세기경 한반도의 남부에 일본 고대왕국의 통치부인 "임나일본부"를 두었다는 주장인데 이는 한동안 부동의 학설이었으나
이 역시 패전후 허구로 드러났다.
(2002-12-02 1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