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9-2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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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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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2)'
이야기 전개의 출발점은 만주지역으로 잡았다.
왜냐하면 전 회에서 독일 Tv 방송이 언급했던 바와같이 훈족의 출발을 이 지역으로 보고 있기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서기전 100년경 즉, 고조선의 멸망시기 까지 연대를 거스럴 올라가서,
고조선의 멸망에 따른 인구의 집단적인 유동단계부터 고찰해 보고자 한다
당시 인구 유동의 규모를 가늠할 길은 없으나 추리를 해 본다면 고조선 강역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왔으므로
고조선이 멸망한 서기전 100년경에는 더 이상 먹고 살 수가 없을정도로 인구과잉 상태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고조선의 인구가 1억에 가까웠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를 증명할 만한 근거는 없으나 어쨋든 고조선은 이러한 과잉인구로 인해
경제,사회적인 면에서 더 이상 수용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 스스로 멸망의 길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인 면에서 좀더 고찰해 본다면, 당시는 아직 농업이 발달하지 못하여 주로 수렵과 가축의 사육으로 경제생활을 영위해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인구과잉으로 인하여 수렵은 한계에 봉착했을 것이고 미약한 농업경제 또한 수년간 계속된 자연재해로 인하여 수확을 하지 못하자
결국은 가축의 도살이 이어지고 가축의 도살은 경제생활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결국 많은 인구가 먹고 살길을 찾아 떠났을 것이고 이로인한 사회적인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여기에 중국 한나라의 계속되는 칩입,
즉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결국은 스스로의 해체와 멸망이 동시에 일어났을 것이다.
고조선 말기의 상당한 유동인구 중 일부는 한반도 남부에도 상당규모 가 정착했을 것이고 그 뒤 이들중 일부가 일본열도로 건너가
이른바\"기마민족 도래설을 낳게 했을 것이다.또한 일부는(역시 상당규모)서쪽을 향하여 출발하여 몽고의 고원지역에 정착하여
여기서 상당기간을 보냈을 것이다.
이들이 몽고지역으로 들어간것은 만주지역은 지금도 남쪽보다 북쪽이 경제생활면에서 더 열악한 환경이며 중국을로 들어가는 지름길인
남쪽 요동반도 지역의 요하일대는 당의 방효태 장군의 군사가 전멸(고구려칩입시)한 곳이기도 할 정도로 습지 또는 늡지로 형성되어있어
결국은 북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여 몽고에 다다렀고 여기의 고원지역에서 가축을 사육하면서 상당기간 정착생활을 했을것이다.
이들이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볼가강 유역까지 이동의 봇물이 터지게 된것은 아마 기후와 또다시 불어난 인구의 과잉으로 보아야 할것이다.
지금도 몽고의 고원지대는 자연재해 도래시에는 가축의 사육이 불가능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 된다.
혹독한 추위로 초원은 황폐해져 버린다.
1992년에도 정말 그러한 한파가 몰아쳤다.눈은 끊임없이 내렸고 악천후에도 적응력이 뛰어난 야크가 그 자리에 선채 동사했다.
유목민은 부족한 식량때문에 생사의 기로에 섰다.혹독한 추위와 식량부족과 인구과잉으로 인하여 이들은 결국 또다시 이동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여기서 남쪽으로 눈을 돌리수도 있으나 남쪽은 만리장성과 중국인 때문에 내려갈수 없어서 다시 서쪽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이렇게 하여 이들은 중앙아시아을 거쳐 서서히 유럽지역으로 향하여 나아갔으나 고대의 이동수단을 고려한다면 이들이 볼가강 유역에 다다르는 데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며 또한 당시의 통신수단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이동을 눈치챈 유럽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어느날 이들이 유럽지역에 홀연히 나타났다고 유럽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말하고 있으나 사실 이들은 오래전 부터 볼가강 유역 또는
더 남쪽으로 내려와 흑해연안의 크리미아 반도 지역에까지 도달하여 생활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쨋든 이들은 따뜻하고 풍요롭게 보이는 유럽의 중부와 남부지역으로 대거 몰려들었고 이는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게르만 민족으로 하여금
서쪽으로 향하는 이동의 봇물을 터지게 만들어 그 결과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고대사회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이들 훈족의 흔적은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않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그러나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있다.미래에 유전학이 더 발달된다면 이를 통하여 유럽지역 곳곳에서 훈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것이다.
우선 한가지 예를 든다면 오늘날 프랑스의 상 파뉴에서 포우안으로 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곳에 쿠르티솔 이라는 마을이 있다.
훈족에 의해 세워진 이 마을은 8km가 넘는,프랑스에서 가장 긴 거리가 있는 마을이다.
쿠르티솔 시장의 말에 따르면 거주민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자신들의 조상은 훈족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쿠르티솔 마을이 속해있는 트로 읍의 일부 아이들에게 나타난 몽고반점이 유전학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몽고반점은 엉덩이에 나타나는 색소 변색이다.
태어날때 엉덩이에 나타나는 이 푸른색 반점은 중국의 한족에게는 없고 몽고 민족이나 우리 한민족의 거의 모든 아이들에게는 태어날때 나타나 있다.
따라서 현재 이 지역주민들이 실제 훈족과 친족관계에 있다는 유전학적인 증거로 간주된다.
훈족은 일부는 프랑스와 스위스 혹은 헝가리에 정주해서 그곳에 거주하는 민족과 융화했고 유럽의 반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다른 훈족은
그들이 왔던 동쪽의 초원지대,중앙아시아의 평원으로 물러났다.
끝으로 한가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민족이 시베리아 서쪽에서 부터 이동해와 만주지역과 한반도 전역으로 퍼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인식인 것이다.\r\n왜냐하면 고고학적인 발굴이 이를 입증해 주고있는 것이다.
문명은 물의 흐름과도 같아 높은곳에서 부터 낮은곳으로 흐르기 마련인데 만주지역과 한반도는 선사시대부터 유적이 많이 발굴되어
이들의 연대가 중국이나 중앙아시아 또는 시베리아보다 앞선다는 것이 이미 확인된바 있다.
여기서 동물들처럼 떠돌이 생활을 했던 구석기 시대는 접어두고 신석기 시대부터 살펴본다면,
한반도와 만주지역에 있는 신석기 유적은 강원도 오산리 유적과 내몽고 흥륭와 유적으로서 이는 기원전 6000년 경에 해당된다.
이 연대는 중국 황하유역에서 가장 앞선 신석기 유적(배리강)과 비슷한 시기가 된다.
중앙아시아나 시베리아에서 이보다 앞선 신석기 유적이 발견된 예는 없다.
그러므로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신석기 인들이 다른지역으로 부터 이주해온 민족이라고 말 할수는 없는 것이다.\r\n
청동기문화 유적 또한 만주나 한반도 지역이 중국이나 시베리아 보다 앞서있기 때문에(각각 기원전 2500, 2200, 1700년) 만주나 한반도의 청동기 인들이
중국이나 중앙아시아 또는 시베리아 등지에서 이동해 왔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조선은 청동기시대가 시작된 후 서기전 2333년 경에 건국되었다.이 시기에 고조선의 강역인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를 중국이나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등지의 지역보다 앞서 거치면서 앞선 문화와 무기류를 가지고
중국과 싸우면서 항상 이겼다는 기록은 앞서 게제한 역사이야기(파일번호 29,30번)에서도 이미 밝힌바 있다.
결론적으로 만주와 한반도 지역은 오랜세월 동안 토착해서 살아온 우리의 토착민족이 있었으며 이들이 앞회에서 어급했던 것처럼
오히려 다른지역으로 이동해 갔을지언정 우리보다 앞선 민족이 고조선 지역으로 이동해와 주류의 민족이 될수는 없었다는 설명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주민이 전혀 없었다고 볼수는 없을것이다.
예를 들면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의 부인이 중국을 거쳐 들어온 인도계의 장씨 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며,
서기전 214년경 중국의 진시황때 만리장성의 노역을 피해 한반도로 이주해온 사람들도 많았다고는 하나
이들이 고조선 사회에서 주류를 이룰만큼의 세력이 될수는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모든 관점을 종합해 본다면 훈족이 어느시기에 이동해 갔는지는 확실히 알수는 없으나 극동지역에서 서쪽으로 이동해 갔다고 보아야 할것이며
최초 출발시에느 우리와 같은 민족이었으나 이동로 상에서 많은세월을 지체하면서 정착하는동안 그 지역의 인종들과 융화되어 혼혈이 일어남으써
이들이 유럽지역에 나타났을 때에는 아시아도 유럽인종도 아닌, 유럽민족으로서는 처음보는 인종으로 보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만큼 공포감 또한 컷을 것이다.\r\n당시 성직자들은 ,하늘이 요한게시록의 기사를 보냈는데 훈족이 단죄를 집행하는 사람들이고
드디어 신의 분노가 내렸다며 넋을잃고 떠들어댈 정도였다고 한다.
이번 역사이야기의 1편은 독일의 Tv방송(역사시리즈)내용이 대부분이나 2편은 게시자의 의견과 관점이 주류였었다는 점을 밝혀 두면서,
오늘날의 서양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훈족에 대한 역사이야기를 여기서 마치고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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