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9-1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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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과 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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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릉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영릉은 본래 경기도 광주 대모산(大母山, 오늘날의 서초구 내곡동이면서 개포동 뒷산)에 있었으나, 예종 1년인 1469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현재 세종대왕릉(영릉)의 지세는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층층이 해와 달의 모습을 띠면서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내려오는 형국인데다 정남향이어서 풍수지리상 가장 좋은 자리라고 한다. 한글창제는 물론이거니와 천문과학기기의 발명과 정비, 악기, 악보의 개조와 정리를 비롯해 정치, 경제, 문화, 국방, 교육 등 다방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은 조선왕조 500년사에서 치적이 가장 뛰어난 임금으로 평가되는 임금이다. 세종대왕릉 정문으로 들어서면 재실과 세종대왕 동상이 오른쪽에 있으며, 왼쪽으로는 1977년에 지은 세종대왕 기념관 '세종'이 있다.
세종전 안에는 집현전 학사도를 비롯한 여러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으며, 세종전 밖에는 해시계,관천대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세종대왕릉(영릉)과 효종릉(녕릉)은 모두 소나무 숲의 맑고 신선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효종릉은 세종대왕릉과는 달리 좁고 깊숙한 곳에 위치하며 조용하고 호젓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녕릉은 조선 제17대 왕인 효종과 왕비 인선왕후 장씨가 모셔진 쌍릉이다. 본래 양주 건원릉 서쪽 언덕에 있었지만, 현종 14년인 1673년에 영릉 동쪽 언덕으로 천장하였다. 효종은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화폐를 널리 보급한 왕이며, 불운했던 시대의 불행했던 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세종대왕릉(영릉)은 녕릉과 함께 사적 제 19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찾는 사람들에게 역사의 자취를 더듬어 보게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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