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9-11 12:31
|
馬韓 辰韓의 鑄錢官아
|
|
|
글쓴이 :
…
/img/icon_view.gif) 조회 : 277
|
馬韓 辰韓의 鑄錢官아(행자속에 나 오자.. 하라곧도읽음)
먼저 기자조선흥평왕 于母錢鑄出은 실로 마한안왕21년 동전주출시로부터931년전의 일이다.
마한안왕이 그 931년전 기자조선 흥평왕의 遺制를 상습하였다고 볼수있겠지만 그는 원인이요 그당시근인으로는 안왕이 즉위하기전에 25년전 기자조선애왕7년에
진나라시황(서력기원전 215년)이 만리장성을 조축할시에 조선에 使人請助하여 애왕은 役夫를 發하여 秦나라에보내어 만리장성을 助築한 일이있었고
또 安王의 卽位전 12년전에 즉 哀王20년(漢太祖 劉邦 5년 楚覇王 항우5년, 서력기원202년)에 한태조 유방이 使臣을보내어 請助하니 애왕이
發兵助漢하여 해하에서 초패왕을 擊伐한일이 있었다.중국의만리장성축역에 우리조선사람의
공로가 많았다. 만리장성의 半功은 우리의 피와 땀이 어려있는것이라 할 수 있고 한태조
유방의 天子의 貴는 우리의 半功이 기여한것이라 볼수있는바이다. 이만리장성에 갔던역부들의 賃金을 秦 半兩으로,타 中國錢幣로 받아왔을 法하고 동시에 진의 피난민이 우리의
역부를 따라 조선에 來安할際 중국의 자기전폐를 약간 携同하였을 것도 있을수있는일이라
할수있으며 해하역에서 우리조선군병이 성공하니 한고조 유방으로 논공행상에 錢帛을 받아
귀국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이 兩大事實이 다 馬韓安王시대에서 거리가 십여년, 이십년내외의 일이었으니 마한안왕이 이것을 다 親見, 親知하는바이 었었다. 그리하여 父王되시는
武康王(漢孝惠3년 서력기원전193년)이 창업하신지 4년만에 돌아가고 안왕이 英雄의 資로 卽極하여 諸般創整에 無假타가 21년에 동전이 나오게되니
이동전의 주출의 근인은 실로 먼저 萬里長城役과 ?下役에서 온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나는 이마한동전은 진의 반량전과 그제작이 방사한 것이었다는 집상이 든다.
그리고 이 동전을 어떠한 관아에서 주행하였을까하고 추구하여보면 안왕은 무강왕의 아들이니 기자조선을 화유함에 군병에 적하였을 것은 분명하다.
역시마한의 군부가 주전소로 되었을 것이다. 감독관은 당시 대관인 박사나 대부직이 이것을 겸행하였을 것이다.
진한철전은 역시 마한군부주제와 같이 진한군부에서 행하였을 것이요 감독관은 마한의
복속관계로 마한에서 博士 樂습(? 龍자밑에흙 土)建이 와서 정치를 하였으니 진한철주조감독관은 樂습(?)建박사이었음이 분명하다.
상기 글은 1940년 유 자휴선생의 조선화폐고란 책자에 기술되어 있는 글을 옮김.
요즈음 중국이 동북공정을하면서 고구려사를 자기들 변방으로 귀속시키는상황으로
정부와 국민들께서는 대오각성하여 우리나라를 부강케 해야 할것입니다.
오래전 마한은 고구려보다 먼저있었던 국가인데 지금와서 헛소리를 하네요.
상기 사실을 잘 음미해보십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