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1-27 12:19
창군과정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에피소드(1)
 글쓴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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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국군은 창군과정에의 혼란과 군사력이라고 말할 수 없는 열악한 여건하에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에 경비대로부터
    정식 국방군으로 태어나기까지 있었던 일화 등은
    지금까지도 후배들에게 회자되고 있어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시리즈로 여기에 한 번 옮겨 볼까한다.

    1)군번 1번의 시비

    건군 초기 군사영어 학교 출신 110명 중 입교와 동시에 임관한 자도 있었고
    아예 입교치 않고 연대에서 사병으로 복무 중 과거 군 경력이나 능력이 인정되어
    서류만 제출하고 임관한 경우도 있었다.
    장교로 임관하면서 군번 부여는 군 장교 양성기관에서 졸업시
    성적 순으로 메겨지는 것이 통상이다.

    그러나 그 당시 형식상 군사영어학교를 이수하고 제1연대 1대대장으로 보직된
    채병덕 대위는 경비대 총사령부 부관 임선하 소위를 불러놓고 다짜고짜로
    "이 새끼야 내가 이형근이 보다 일본 육사로 보나 계급으로 보나 내가 더 선배인데
    어떻게 내가 2번이고 이형근이가 1번 이란 말이야" 하고 멱살을 잡았다.
    그의 말대로 채병덕 씨는 일본육사 49기 출신의 소령이었고
    이형근씨는 일본 육사 56기 출신으로 대위였다.

    임소위는 "군번이야 행정 정리상 서류 접수 순 대로 부여한 것 뿐이지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대선배 님들이 들어올 텐데 그러면 그때 마다
    군번을 바꾸어야 하겠습니까?" 라고 대답하였다.
    그의 대답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정규육사를 나온 채대위 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답변이었다.
    실상 임소위는 학병 출신 이어서 군번 부여 요령을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대답이 바로 창군 초기의 고충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 새끼야 군번이 무슨 선착순 인줄 알아"
    격분한 채대위의 주먹이 날아가기 직전에 험악한 사태는 무마되었다고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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