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9-2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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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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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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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으면 허전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잠을 잘못 잔 탓인지 고개가 거북살스럽고 아프다.
잠자리에서 돌아누울 때에도 두 손을 깍지끼어 머리를 들듯이 돌려놓아야 할 지경이다. 행여 누가 뒤에서 부를 때는 고개만 돌려 바라보지 못하고 몸 전체를 돌려야만 쳐다볼 수 있다. 머리가 이렇게 무거운 물건인지 정말 처음으로 알 것 같다. 가는 목으로 지금까지 이 무거운 머리통을 어떻게 지탱해 왔는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갈 때는 그 '존재감' 조차 없었는데 무언가 조화가 깨지고 보니 존재함이 심각하게 느껴진다.
학교 졸업식에서 근엄하신 교장선생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될 사람 , 둘째 그 자리에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셋째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
너희는 이제 사회에 나가 어느 자리에 가던지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사람이 되라. "
한참 오래 전에 읽었던 일본사람이 썼던 것으로 기억되는 어느 소설에 이런 것이 있었다. 질병으로 오랫동안 직장을 비우고 투병생활을 한 끝에 직장에 복귀하고 보니 자기가 없이는 어느 일 한가지 제대로 되어갈 것 같지 않았던 그 직장이 여전히 잘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자기 존재의 무가치함에 절망하여 자살했다는 삽화였던 것 같다. 자기 오만이 너무 지나쳤던 게 아닐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그중 어느 한 가지 인들 어찌 있어서는 안될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냥 인간의 좁은 소견이 만들어낸 어처구니없는 편견이겠지. 한편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라는 것도 그렇다. 시골에서 자랄 때 해마다 봄이면 집에서 낳은 달걀로 어미 닭에 품게 해 병아리를 두 배쯤 까게 했었다.
한번에 잘 될 때는 한 스무 마리, 어떨 땐 열 대 여섯 마리쯤 귀여운 병아리가 태어나 생명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으로 새 봄을 시작한다. 털갈이를 하느라고
미운 한철을 보낸 다음 제법 벼슬이 올라와 병아리를 졸업한 수탉 냄새를 피울 때쯤 이면 저희들끼리 위계질서가 정해지고 지도자연하는 놈이 혼자만 벼슬이 하루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회치는 목청도 혼자만 당당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때, 몸 약한 아들을 위한 모정에 할 일없이 희생되고 나면 지금까지는 별 볼 일없이 대장의 눈치만 보던 어떤 놈이 며칠사이에 지난번 대장보다 더 훤칠한 장닭이 되어 군림한다. 또 얼마나 그 지위를 즐길 수 있을지 모르면서....
인간이라고 뭐 별 다를 게 있을까. 동물은 - 물론 인간도 동물이니까- 지배성향을 갖춘 개체의 비율이 일정하단다.
작가 버나드쇼가 탐험가 스텐리에게 이렇게 물었단다. " 당신이 탐험도중에 병에 걸려 지휘를 할 수 없을 때 지휘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 " 스텐리는 주저하지 않고
" 20명에 한 명 꼴, "
" 그것은 정확한 숫자입니까, 아니면 추산인가요? "
" 정확합니다. "
어느 곳에서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도 얼마나 가소로운 언어의 유희인가. 어찌 어찌 살다보니 서방각시로 만나 산지 벌써 스무 해가 지났다. 요란스런 연애행각을 벌린 것도 아니고 때로는 티걱 거리고 때로는 서로 눈 흘겨가면서....
하지만 무슨 일로 서로의 빈자리를 느낄 때면 어느 커피 선전 문구대로 " 빈자리가 너무 큰 " - 이거 내가 너무 아부하는 게 아닌가 몰라 - 그런 사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되기 위해 피 말리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없으면 왠지 허전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 어디에 있던지. 정녕 될 수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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