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평소 금슬이 좋기로 소문난 잉꼬부부가 가정법원을 찾아와
이혼신청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연을 털어놓았다.
부인 말에 의하면,2년 전 남편이 은퇴하고 집에 들어앉으면서부터
가정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퇴직 후 남편이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것이 보기에 안쓰러워
일부러 일거리를 만들어서 함께 외출을 했다.
전에는 자신이 하고 다녔던 동사무소,은행 일을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쇼핑할 것도 없으면서 남편과 함께 백화점을 한 바퀴 돌다가
남편이 좋아하는 냉면을 사먹고,마트에 들러 장을 볼 때도
남편이 직접 물건을 고를 수 있도록 자신은 뒤로 물러서서 딴전을 피웠다.
남편은 벌건 대낮에 마트에 가서 장보는 것이 쑥스러운지
싫다고 하더니 차츰차츰 적응을 해갔다.
자식들도 펄펄 날던 아빠가 집에 들어 앉아 풀 죽어 있는 모습이
안되어 보였던지 아빠에게 음료수도 가져다주고 곁에 앉아서
코미디 프로를 함께 보면서 배를 잡고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서부터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남편의 존재가
귀찮고 부담스럽게 느껴지면서 일상이 짜증스러웠다.
남편이 직장에 다닐 때는 아침에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낮 시간동안 만큼은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는데 이젠 24시간
남편이 곁에 붙어 있으니 전화기를 붙잡고 친구들하고 수다를 떨 수도 없고,
백화점에서 세일을 해도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쇼핑을 하면서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그동안 한 달에 두어 번쯤 친구들과 어울려 찜질방에 가서
몸을 풀고 왔었는데 이젠 남편이 집에 있으니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아서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아서 숨이 막혔다.
또한 피치 못할 일로 외출을 했다가 허겁지겁 집에 들어오면
남편이 벗어던진 옷과 신문들이 거실 바닥 여기저기에 널려져 있어서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짜증이 났다.
게다가 남편은 집에만 있다 보니 좁쌀 영감이 되어가는지 마트에서 장을 봐오면
장바구니를 들여다보면서, '많이 사왔다, 적게 사왔다.' 간섭을 하고
냉장고 문을 열고 서서 "냉장고 안이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 며 잔소리를 해댔다.
그리고 예전에는 점심 때가 되면 혼자서 적당히 끼니를 때우곤 했었는데
이젠 세끼 밥상을 차려서 남편에게 바쳐야 하니 한시도 쉴 틈이 없다.
이렇게 피곤해 죽겠는데도 남편이 꼬리를 물고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해대서
참고 있다가도 어떤 때는 자신도 모르게 싫은 소리를 하게 된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부부싸움을 했다.
부부싸움 하더라도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만 가지고 하면 좋으련만,
자식들 교육을 잘 시켰느니 못 시켰느니 하며 속을 뒤집는다.
싸움도 습관인지 요즘 들어 하루도 싸우지 않고 지낸 날이 없었다.
이 부인은 예전에 보지 못했던 남편의 허물이 속속 들어나
실망도 그런 실망이 없다며 이 부인은 뒤늦게 찾아온 남편 시집살이에
없던 편두통이 생겨 죽을 지경이라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오늘 아침에도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을 하다가 이 나이에 친정어머니,
시어머니까지 들먹이며 대판으로 부부싸움을 했다고 한다.
이 부인이 쏟아놓은 푸념을 들으면 답답한 처지가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을 두 사람이 한 지붕, 한 이불을 덮고 살아왔지만
두 사람 모두 공유하는 마음이 너무나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람쥐 쳇 바퀴 돌 듯' 반복된 세월 속에서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왔을 뿐,
마음을 섞고 살아온 것 같지는 않았다. 마음을 섞고 살아온 부부라면,
정이 들어도 한참은 들어있어야 할 나이이기 때문이다.
부부란 어떤 사이인가?......기세등등하던 남편이 직장에서 물러나
풀이 꺾인 채 집에 있어야 하는 침통한 심정을 아내가 몰라주면 누가 알아줄까?
부부사이에 이해타산이란 있을 수 없다.
자유스러웠던 내 생활에 남편이 집에 버티고 있어서
구속받고 있는 것 같아서 밀쳐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이는 매우 이기적인 생각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해타산적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가정으로 돌아와야 할 사람이 때가 되어 제자리를 찾아 온 것뿐이다.
그는 귀찮은 손님이 아니다.
그동안 남편이 밖에서 일하느라 같이 하지 못했던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며,
노후에 부부가 함께 지내는 것이 얼마나 재미가 쏠쏠한지를 알아야 한다.
참으로 우울하고 씁쓸한 마음이 들어 내 자신도 한 번 뒤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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