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 그곳을 찾아서../40계단 ♤ 사람이 평소에 안하던 짓을 갑자기 한다던가, 옛날에 살았던 흔적이나 사람을 찾으러 길을 나선다거나 하면 "죽을 때가 다 되었나 보다" 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한 속설이 나에게는 아직은 당치도 않는 말 이라고 치부해 버리지만,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옛날 생각이 나고 지나간 나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최근엔 나에게는 많은 추억과 애환이 깃들어 있는 부산엘 다녀왔었다. 특별한 볼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무작정 떠난 것이 발길이 부산으로 향한 것이다. 부산하면, 국제시장, 동래읍성, 40계단, 북항, 남항부두. 적기, 해운대 달맞이 고개, 영도다리, 태종대..등 등 한 번 찾아보고 싶은 곳이 참 많다. '부마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어디부터 들러 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중학교 등하교 길에 자주 지나 다녔던 동광동의 '40계단' 이 먼저 떠올랐다. '경상도 아가씨' 의 노래 배경인 이'40계단' 층층대는 참 애처로운 곳이다. 계단 밑의 기념석 뒷면에 노래가사가 이렇게 적혀 있다.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울지말고 속시원히 말좀하세요…."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40계단 중간 쯤에 앉아있는 '아코디언 맨'이 반주를 해준다.) 40계단은 '부산 역'에서 지름길로 오면 바로 닿는다. 6·25 때 피란민들이 들끓었던 곳이기도 했다. "40 계단 층층대에 기대 앉은 나그네~" 노래 가사는 전쟁통에 고향 잃고, 부모 잃고, 처자 잃고, 남편 잃고, 하루 하루 사는게 지옥같은 타향에서 한 많은 피난살이 설음도 많아 계단에 앉아 우는 피난민들을 달래주고, 밤에는 부산항 북항에 정박된 선박들을 보면서, 함흥 부두 갈 날을 향수로 달래준 곳이 40계단 이다. '경상도 아가씨'란 가요가 이 40계단을 전국에 알렸다. 내가 이곳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그때만 해도 아직 휴전회담이 채결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라서 그런지 이 계단에 오면 가요 노랫말 그대로 전쟁통에 남편이나 아내, 부모형제를 잃은 사람들,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계단 여기 저기에 시름없이 앉아있는 모습들이 언제 와 봐도 눈에 띄었다. 지금 그분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아마 대부분 돌아가셨을 것이다. 더러는 가족을 찾은 분들도 있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평생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 하면서 한많은 세월을 보내다가 눈을 감으셨을게다. 계단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때 그분들의 모습들이 떠 올라 잠시 가슴이 아려왔다.. 부산은 전쟁을 딛고 선 도시다. 멀리는 가야·신라의 영토전쟁부터 시작해 고려시대 이래 왜구의 침략과 참혹한 임진왜란, 일제의 대동아전쟁, 동족상잔의 6·25 까지 많은 전쟁을 겪었다. 부산은 임진왜란 때 최전방이었고 6·25때는 최후방 이었다. 부산은 임진왜란 때 첫 격전지로서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이 순절하면서 동래성의 부민 모두(5000여명)가 왜군에게 도륙을 당한 원한이 서려있는 곳이다. 여기서 잠시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가를 살펴보면, 2005년 부산 지하철 3호선 공사를 하면서 발굴된 유골의 상태가 이를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동래성의 해자임을 보여주는 장소에 수천 개의 목이 발견되었는데, 아래턱이 잘려나간 남자의 유골은 정면에서 칼을 맞고 고개를 돌린 상황에서 2차 가격을 당하고 다시 후두부에서 공격당해 살해당한 것으로 판명되어 손상된 유골은 그가 살해당한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20대 젊은 여성의 유골은 주저앉혀진 상태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가해자에 의해 세 차례나 두개골이 칼로 찔린 후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5세 어린이의 유골은 두개골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총알(조총)이 뒤쪽에서 뚫고서 나간 흔적을 보인다. 대부분의 유골들은 전투 이후에 처형,살해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1608년 동래부사 '이안눌'의 詩 '동래맹하유감' 에서, "온 고을 사람 한꺼번에 성 안에서 피로 물들고...모두 죽어서 곡할 자 없다." 라는 말이 씌어있을 정도로 당시 왜군의 만행이 어느정도 였는지를 짐착케 해준다. 또한 부산 부두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는 남편이나 자식들은 징용으로, 꽃다운 어린 여식은 정신대로 끌려가 강제로 배에 태워졌던 곳이며 해방이 되자 수많은 귀환 동포들을 토해냈던 슬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가야시대 이후 일본은 왜·왜구·왜적·일제 등으로 얼굴을 바꾸어 가며 줄곧 부산을 짓밟았고,전흔(戰痕)은 곳곳에 남아 있다. 6.25 때는 유엔군이 이 땅에 첫 발을 내딛었던 곳이었으며 그런가 하면 월남전 때는 파월장병들을 이 부두에서 전장으로 실어 날았던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수영동에는 '유엔기념공원'이 있어 부산의 평화 이미지를 세계화하는 텃밭이기도 하다. 현재 이곳은 부지가 4만5000평이며 11개국 유엔군 2300명이 안장돼 있다.(계속) 경상도 아가씨(박재홍)(이 가요를 듣으시려면 맨 위의 '아라랑' 곡 정지 표식 클릭!)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 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자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러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 없이 슬피 우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고향 길이 틀때 까지 국제시장 거리에 담배장수 하더라도 살아 보세요 정이 들면 부산항도 내가 살던 정든 산천 경상도 아가씨가 두 손목을 잡는구나 그래도 눈물 만이 흘러 젖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영도 다리 난간 위에 조각 달이 뜨거든 안타까운 고향 얘기 들려주세요 복사꽃이 피던 날 밤 옷소매를 끌어 잡는 경상도 아가씨가 안타까워 우는구나 그래도 잊지 못할 내 고향이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