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오늘도 길을 걷는다..
혼자 말없이 뚜벅뚜벅 산길을 걷는다.
나에겐 때로는 늘 다니는 길이 낯설고,
처음 맞이하는 길이 옛 친구를 만난 듯 전혀 생경하지 않다.
길을 가다가 때론 길을 헤맨다.
나는 매번 "안녕" 하며 길에 인사한다.
그러면 길은 기쁨 마음으로 자신을 열어 나를 맞이하며
길을 스쳐간 뭇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길은 내가 지치고 힘들면 소곤 소곤 위로의 말로 나를 안아주고
잠시 쉬어가게 자리를 마련해 준다.
나는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얼굴과 말들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에
가벼운 떨림과 동시에 짙은 호기심이 인다.
아득하게 멀리서 바람이 불어 온다.
바람은 오랫동안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 괴로워한 한 여인의 얘기를 들려준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왜 그럴까’라는 상념에
정신이 빼앗겼나 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 자신도 모르게 등산로를 벗어나
소나무가 울창한 산기슭의 비탈진 곳을 올라가고 있었다. 문득,
"길이 있어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니 길이 생겼다" 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헤매는 길은 내가 길을 만들어 가는 새 길이다.
이제 이 길은 나만이 아는 감춰진 나의 길이 되는 것이다.
정상에 올라 곧 하산을 하였다.
산 중턱을 조금 지나 산기슭 가까이 이르렀을 때
양지바른 쉼터의 벤치에 앉아 책을 보고 있던 여인이 나를 빠끔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이가 50 중반으로 보이는 단아하면서 오연한 모습의 여인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띄고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입술을 약간 움직이는 듯 하더니 그냥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좀 의아한 생각이 들어 그 여인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그 여인에게 다가가서 말을 했다.
"부인, 저를 아십니까?”
"아니오. 선생님을 뵌 순간 누군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리고 그 사람 생각나서요.”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닮았다면 미남은 아니겠네요. 혹시 부군이나 아니면……”
“남편? 남편은 아니었어요. 그 사람은 미남은 아니었지만 꼼꼼한 성격에 매우 이지적이었어요.
제가 그 사람을 떠나보냈지요."
"저……,제가 옆에 좀 앉아도 되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세요.”
나는 그 여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떠나보냈다고 했나요?”
“그래요, 제가 남자와 헤어졌답니다" 오래 전의 일이지요"
"오 참, 그 사람은 며칠 전에 죽었지요..."
“헤어지고 나서 한번도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나요?”
"예. 그랬어요. 그 사람이 죽었다는 기사를 며칠 전 신문에서 보았어요.
그 사람은 베스트 셀러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이름이 알려진 작가이니까요.”
나는 며칠 전 신문에 부고가 실린 소설가 K가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하면서
그런 내색은 하지않고 말했다."
“사랑했었나보죠”
“예,우린 서로 무척이나 사랑했었지요"
그 여인은 말을 멈추고 혼자 생각에 잠긴 듯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무겁게흐르는 침묵이 어색하고 불편하여 내가 말을꺼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아닌가요?"
"예, '미치 앨봄(Mitch Albom)' 이 지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이 맞습니다.”
“부인께서는 그 책에서 어느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던가요?”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는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걸맞은 좋은 얘기와 인상적인 대목이 많은데,
왜 그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지요?”
“그래요. 이 책은 삶과 죽음에 대한 참다운 의미와 사랑이 갖는 진정한 가치에 대하여
우리에게 참 지혜를 말해 주고 있지요.
그런데 말이에요..저에겐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는 말이 얼마나 절실하게 다가오는지..”
그 여인은 잠시 말을 삼키더니 이어 말했다.
“실제로 제가 제 자신을 용서하고 제 자신과 화해하기를 얼마나 바랐으며,
그것이 제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선생님은 모르실 거에요.”
“그게 그 사람과 헤어진 일 때문인가요?”
“예, 그래요. 이유야 어떻든,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이 나를 용서하기 이전에 내가 내자신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화해하지 못한다면
상대와 진정한 용서를 통한 화해가 어찌 가능하겠어요?"
나는 아까부터 그 사람과 헤어진 이유가 궁금하여 그 여인에게 물었다.
“서로 사랑했다면서 왜 헤어졌나요?”
그 여인은 나의 질문에 짧은 침묵을 한 후 말했다.
“그 사람은 여느 사람과 달리 완전한 사랑을 내게 주었지요..
그게 이유라고 말씀드리면 선생님은 웃으시겠지요.”
“글쎄요. 좀 요령부득이라……”
“그 사람은 저를 단지 여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뜻을 같이 나누는 지우(知友)로서 사랑해주었지요.
그 사람은 저에게 문학이며 철학, 역사, 예술, 음악, 시사 등에 관해 많은 얘기를 들려 주었고,
저는 그 사람과 주고 받는 그런 대화를 통해 말할 수 없는 지적 희열을 맛보았어요.
그 사람은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게 해주었고, 나를 지적으로 성숙하게 해주었지요.
나는 그 사람으로 인해 변화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꼈답니다.
그는 나의 멘토이며 도반이었지요. 그 사람은 세상사에 대해
상대적인 이치를 인식하는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어요.”
“예? 회의주의자라고 말하셨나요?
그 사람이,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보편타당하지 않은 주장들의 진실성에 의문을 품고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 또는 반증하려는 태도를 갖는 회의주의자였다는 말씀인가요?”
“예. 그 사람은 힘주어 말했어요.
‘진정한 지성인이라면 반드시 모든 주의, 주장, 이론과 심지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통설에 조차 회의를 품어야 하고 비판적이어야 한다.
세상은 회의주의자들의 비판적인 사고 활동에 의해 바뀌고 진화해 왔다.’ 라고요."
“얘기를 듣고 보니, 그 사람, 어쩐지 좀 고지식한 완벽주의자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예, 그 사람은 완벽했지요. 그런데 그게..
그 여인은 말을 멈추고 침을 꿀꺽 삼키고는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미간을 좁혔다.
나는 그 여인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 여인의 눈동자에는 그리움이랄까 아니면 슬픔인 듯한 감정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잠시 후 그 여인은 마치 비현실적인 대상을 향해 혼잣말을 하듯 나직이 말을 했다.
“아무래도 말씀을 마저 드려야 겠지요."
나는 말없이 그 여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사람의 사랑은 너무나 완전했어요.
제게는 그 사람과 함께하는 모든 게 다 새로운 경험이었고 경이로움 그 자체였어요.
나는 영육으로 희열이 충만한 새로운 삶을 맞이하였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완전함이 이상하며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두렵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런 제 자신이 좀 어처구니없었죠.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것이 쉽게 나에게 다가 왔을까?
그 사람이 내게 그런 사랑을 쉽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줄 수 있음은
딴 사람에게도 그렇게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과거에 한 남자로부터 배신 당했던 불쾌한 기억이 되살아났어요.
그 남자는 나와 사랑을 나누면서 동시에 딴 여자와도 관계하고 있었지요.
나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그 남자와 헤어졌지요.
흔히 여자는 증명된 사랑에도 불안해 한다고 하자나요.
더구나 제 과거의 경험에 의해 기억된 남자에 대한 이미지로 인해 이 사람도 여느 남자와 같이
여기 저기 잠간 머물다 가버리는 바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곤 했어요.”
나는 그 연인의 말을 들으면서 내자신에게 되뇌었다.
"이것도'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의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
“예? 뭐라고요? 인지부조화라고 했나요?
그렇군요. 원래의 의미에서 좀 벗어나기는 하지만 자신의 믿음에 맞춰 현실을 왜곡하여
자신의 믿음을 확인한다는 의미에서는 인지부조화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저는 회의주의자가 되었어요.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을 찬찬히 살펴보았지요.
사람의 내면에 숨겨진 감정들은 얼굴의 표정과 사소한 언행에 드러나잖아요.
그렇게 보려고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 사람의 사소한 언행들이
가식, 그것도 완전함으로 포장한 의도적인 가식처럼 보이더라구요.
그 사람이 의도된 가식으로 무장된 플레이보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저는 그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버림을 받을까 봐 두려웠답니다.
이 두려움이 차츰 고통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싶었지요.
한편으로는 사랑을 확인하고 의심하는 저 자신이 무척이나 싫기도 했고요.
어느날 우리는 일반적인 인간사에 대한 어떤 주제로 토론하다가 크게 다투고 말았답니다.
그 주제가 저를 두고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들려 제가 크게 화를 냈고
마침내 우리는 크게 다투고 말았어요.
저는 누군가 증오할 대상이 필요한 사람처럼 그 사람에게 증오의 말을 퍼붓고 말았어요.
"당신이 내겐 보인 행동들에는 진정성이라든가 사랑 같은 것 애당초 없었죠.
모든 것은 의도된 거짓이었어요. 당신은 연애 선수로서 나를 단지 섹스 파트너로 대했을 뿐이에요."
저는 그 말을 하면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가버렸어요.”
그 여인이 말을 끝냈다.
그 여인의 눈가에 맺힌 이슬이 서산으로 기우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그 사람은 잠간 머물다 떠나는 바람이었나요?"
”아니에요. 전혀....”
“부인의 그 말에 그 사람은 무슨 말을 하던가요?”
“그 사람은 단지, "우리는 다른 언어로, 아니 같은 단어를 다른 의미로 말을 주고 받았나 보다.
서로의 생각과 철학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동화되어 함께 머무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에는
결국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나 보다" 라고 말했어요."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슬비가 소리도 없이 내리고 있었다.
비의 무게에 눌린 듯 하늘이 낮게 드리워지고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자신의 몸집이 무거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려가서 '드라이 마티니' 한잔 하시겠어요?”
내가 뜬금없이 '드라이 마티니'를 한잔 하자는 그 여인의 말에 어리둥절하며 대답을 머뭇거리고 있자,
그 여인이 말을 이었다.
“그 남자는 드라이 마티니를 무척이나 좋아했거든요....”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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