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8-22 19:30
◐ 아름다운 황혼의 어느 부부 ◑
 글쓴이 : …
조회 : 611  


    그 부부는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살고 있는 아파트 뒤편에 있는 불곡산을 오른다.
    남편은 전문적으로 산을 타는 사람이 아니지만 산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해서 산밑을 찾아가 산다.
    몸이 부실한 편인 아내는 남편에게 이끌려 산 중턱까지 올라갈 때도 있고,
    켠디션이 안 좋을 때는 산 밑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돌아오기도 하는데
    성질이 급하고 발이 빠른 남편 뒤를 따라가기가 힘에 부친다.

    산 중턱을 오르다보면 작은 돌멩이와 나무 뿌리들이 여기저기
    흙속에 파묻혀 있어서 넘어질까 봐 신경이 많이 쓰여
    조심스레 엉금엉금 산에 오르다. 문득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면
    남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조심해." 한다.
    내가 넘어질까 염려가되어 내려다보고 서 있는 남편을 보면..,
    나는 말로 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이 세상에서 저 사람 말고 누가 나를 저렇게 지켜봐줄까,....

    젊었을 적엔 그렇게도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남편이 (친정어머니는
    대한민국에서 네 남편처럼 속을 썩혀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딴 사람이 되어 더할 나위 없이 잘해준다.
    남편은 가끔씩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내 등을 다독여주며 픽 웃고 돌아선다.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뒤늦게라도 깨닫고 있는 남편이
    참고 살아온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등등하던 기세가 다 어디로 갔나 싶어 못내 마음이 아프다.

    한때 남편이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내가
    남편보다 더 나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허물이 많은 '닮은 꼴 부부' 인가 보다.

    나는 지금, 내게 찾아온 황혼이 너무나 소중하다.
    많은 시련을 통해 세상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남편과 오모가리 같이 곰삭은 정을 나누며 살고 있는 황혼이
    넉넉하고 따뜻해서 마음이 평화스럽다.
    그래서 황혼에 찾아온 축복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 겨울 문턱에 들어서면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눈꽃을 피운다.
    그 아래를 노부부가 백발을 휘날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으며 조심스레 걸어 가다가
    앞서 가던 남편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아내 목에 둘러진 목도리를 다시 한 번 여며주는 손끝에서
    '순백의 눈꽃사랑' 이 피어 난다.그들은 마주보는 눈빛에서,
    "여보 고맙소."

    "아니에요, 당신이 곁에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영원한 이별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두 손 마주잡고 가는 인생의 동반자 아내와 남편..,
    용서하고 베풀고, 마음을 비워가는 황혼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