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10여년 전에 '잔여수명 자동계산기'라는 것이 인터넷상에 돌아다녀서
나도 한 번 들어가서 각 항목에다 체크를 하고 그 결과를 보았더니
잔여수명이 19년 이라는 제법 긴 기간이 나와서
장난삼아 해 보았지만 기분은 그리 나쁜편은 아니었었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인터넷상에서 '기대수명' 에 대한 글을 발견하고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차에 한 번 들어가서
해당되는 란에다 체크를하고 그 결과를 보았더니
이젠 9 년 이라는 수치가 나왔다.
나는 평소 주변에서 노인 관련 이야기를 하든가
수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나에게는 아직 때 이른 이야기로 여겨
별로 깊은 관심을 두지않았었는데
그 사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명의 시계가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
잔존 수명이 10년이나 단축되어져 있었다.
사실 9 년도 짧은 세월은 아니지만
9 단위 숫자가 10 단위 숫자와는 분명 차이가 있어보인다.
마치,3000원 짜리 물건이 2,900원으로 할인가격이 붙어있으면
단지 100원 차이 인데도 그 물건을 사게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10년 전에는 10 단위 숫자여서 다소 느긋한 기분이었었는데
이게 이제 9 단위로 한 자리 수로 내려 가니까
심리적으로 분명히 다른 느낌이 온다.
좀 심하게 말해서 죽음의 그림자가
안전에 얼른거리기 시작한다고 할까...
당초, 내가 언감생심
무슨 영화(榮華)를 바라면서 살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10년이라는 귀중한 생명의 시간을 하릴없이
허송세월 했다고 생각하니
아쉽고 후회스런 마음이 생기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어줍잖게도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불가(佛家)에서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과 같이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수명이 4~5년 가감된다고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이처럼 금쪽같은 수명이 늘어난다니
아쉬움과 후회스런 마음을 접고
앞으로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낙천적으로 살아야겠다고 속다짐을 해 본다.
하기야 걱정하고 고민해봤자
세상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것을 평생 보지않았는가..
'오늘, 여기'의 소중함을 모르고 사는 삶이 참 행복일 수 있을까..
보다 나은 미래가 있는줄 알고 산 너머, 저 산 너머
가고 또 갔지만 산 너머에는 또 산이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느라 나 또한 온전한 '오늘'의 생을 향유하지 못한채
오늘에 이르렀다.
내게 허락된 시간이 정말로 얼마 안된다면
이제부터라도 꽉차게 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정지용' 문학상을 받은
다음 시(詩)는 오늘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한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은 하루살이 떼..
(조요현의 '아득한 성자'에서..)
하루라는 순간을 꽉 차게 살고 가는 하루살이를
성자로 보는 시각도 독특하거니와
하루를 살고도 다 보고 다 누리고 살았다면
그러한 삶은 아무런 아쉬움도 없을터..
천년을 산다고 해도 그 어느 하루도 산 것 같이 않게 산다면
그거야말로 껍데기의 삶이 아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이 내일로 가는 징검다리인 줄만 알고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는 내일에의 허망을 향해
오늘의 가치를 잊고 살고 있는 것이다.
베스트셀러인 '가시고기'의 내용 중에,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그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
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