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0-0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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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유서와 안락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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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유서(Living Will)'
미국의 존엄사 근황(1) - 말기환자 연명의료 문제점
美 44개주-워싱톤 DC 연명의료 중단-생전유서 법제화 죽음의 존엄성 배려 종말의료 개념 시대적 부응노력 바람직-
-말기치료를 결정하는 생전유언-
-회복가능성이 없고 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을 잃은 말기환자가 될 경우에 대비해서
자신의 판단력이 건전할 때 작성한, 자신이 바라는 말기치료를 명시한 유언이 생전유언(Living Will)이다.
의료지시(Advance Directive. A.D. 라 약칭)는 이 생전유언과 의료법정대리인(Medical Power of Attorney=POA. Healthcare Proxy)을 구비한 문서를 말한다.
*주: 여기 대한 자세한 설명은 대한의학회의 의료윤리지침 제1보(2002년 9월)와 필자의 졸저 '안락사와 존엄사(의학신문사)' 를 참고하기 바란다.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80%는 생전유언의 중요성을 인정하고있으나, 실제로 이를 준비하고있는 사람은 전채인구의 15-20%(65세 이상노인은 55%)에 불과하다.
말기환자를 캐어하는 최선의 방법은 전인적(全人的)캐어, 즉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인 양면을 다스리는 완화요법(Palliative care)이라는 것은
의료전문가와 일반국민의 일치된 견해다.
완화요법은 무엇보다도 환자의 신체고통과 증상을 덜어주고 불안을 안정시키며,
가족에게 정신적 도움을 주는 것과 더불어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는 일이 중요하다.
현재 미국의 생전유언에 관한 정책은 각주마다 제가끔 정해지고 있으나, 1991년 연방의회에서 법제화한 환자자결법안(Patient Self-Determination Act)을 지켜야만 한다.
이 법안은 메디캐어(노인보험)와 메디캐이드(빈민보험) 등 연방정부의 공공의료보험혜택을 받고있는 병원기관(실질적으로 모든 병원과 양로원과
재활원 등)에게, 임종-캐어를 포함한 치료의 선택권과 결정권이 환자자신에 있다는 것과 생전유언준비를 모든 입원환자에게 통고해야한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JCAHO(의료시설인정 합동조사위원회)에서도 인준 받은 모든 병원기관은 환자차트에 임종시 DNR(Do Not Resuscitate. 소생술을 시행 않음)여부를
반드시 기재해야 하게끔 했다.
현재 미국의 44개州와 수도워싱턴에서는 생전유서가 법제화돼있어 그에 따른 연명의료중단이 법적으로 허용되고있다.
그리고 여러 州에서는 구급차응급치료 팀이 환자구출요청을 받고 출동해서 소생술(CPR)시술이 필요할 때, 의사가 서명한 DNR(의료지시에 명시된 것)제시가 있을 경우는
CPR을 유보하고있다. 이상 환자 자결법안과 JCAHO 규제로 해서, 입원환자는 자동적으로 의료지시(A.D.)에 대한 인식을 갖게되지만,
AMA와 정부는 모든 일반국민에게 평소 A.D.를 갖추도록 적극 권유하고 있으며 여기에 의사들의 역할이 크게 기대되고있다.
환자에게 존엄사와 의료지시 등 막연한 용어를 더욱 자세히 설명해주고 주지시켜야하며,
그리하여 모든 환자가 종말에 가서 존엄성을 갖고 죽을 수 있는 자신의 결정권을 행사하게 도와주는 일이 의사의 의무이다.
-생전유언법 촉진한 두 여인의 불행 -
존엄사가 유럽과 미국에서 전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배경은 '보람있는 삶' QOL을 강조했던 고대 로마 희랍사람의 사상과,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인위적으로 연장시켜서는 안된다"는 기독교의 종교관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에서 존엄사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전통적으로 한국인의식구조 속에 잠재한 불교사상 무아(無我)와
유교의 조상숭배사상에 영향받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생명이 자기개인의 사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생명에 대한 인간의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무아요,
형태야 어떻든 부모가 하루라도 더 장수하게 하는 일이 더 큰 효도가 된다는 유교사상 때문이다.
시대역행적이며 의료후진국 중국을 모방한 2원제 의료제도하에서 위협받고있는 한국국민보건은 그나마 우수한 현대의료인맥으로 현대의학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특히 전통에 좌우되기 쉬운 종말의료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현대의학이 역할이 주도해야 할 일이다.
21세기 지구화시대에 즈음한 사회에서 종말의료도 세계가 지향하는 합리적인 조류에 동참해야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시대전통을 고수하려는 일부 환자와 가족을 계몽교육 시키는 일이 우리 의사의 책무일 것이다.
현재 미국 땅에 존엄사 문화가 뿌리깊게 보급된 배후에는, 식물인간으로 튜브영양에 의지하며 무의미하게 살다가 법원판결에 의해
이 세상을 하직한 젊은 두 여인의 영혼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아시다시피 1975년 뉴저지주의 Karen양(21세)은 알코올과 마약복용 후 혼수에 빠져, 달갑지 않은 인공호흡에 매달려 연명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모의 법정투쟁이 주효하여, 州대법원판결은 호흡기제거를 명령했다.
그러나 튜브영양은 계속되어 10년간 더 연명하다가 사망했다.
두 번째 케이스는 1983년 자동차사고로 혼수상태가 된 Nancy양(25세)은 튜브영양으로 연명하다가,
부모가 제소한 소송에서 승소판결 받아(1990년) 튜브를 제거하고 사망했다.
위의 두 법정투쟁이 도화선이 되어 존엄사 개념이 요원의 불결처럼 전국에 퍼져나가, 1980년대 각주에서 생전유언법제화를 서둘게 됐던 것이다.
최근 또 하나의 식물인간에 가까운 젊은 여인의 불행을 놓고, 연명의료의 문제점이 이슈화되고 있다.
종말의료역사상 가장 말썽 많은 사건이 되고있는 Terri Schiavo양 케이스는 다음 장에서 언급하기로 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2> 외국의 존엄사 연명치료로 인해 환자는 고통 속에 죽음의 과정을 연장해야 하고,
이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은 정신적인 고통과 함께 막대한 의료비 문제로 경제적·사회적·심리적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3차 의료기관의 병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환자들로 인해 정작 급하게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신속한 입원치료를 받지 못한 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가 병을 키우기도 한다.
<의협신문>은 개인이 아닌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 그리고 의료진들과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다.
▲김일훈 의학칼럼니스트(재미의사) -미국과 유럽의 존엄사
1960~1970년대에 걸쳐 미국의 인권운동이 퍼짐에 따라, '존엄사'와 '죽을 권리\'에 대한 미국인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 계기가 된 사건이 우리가 잘 아는 '카렌재판'이다.
1975년 4월 식물인간인 20대 여성 카렌의 부모는 딸의 인공호흡기제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며 드디어 1978년 3월 뉴저지주 최고재판부는
부모의 요구를 승인하게 되어, 그 여파로 \'존엄사 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에 확장되었던 것이다.
같은 해(1978년) 9월에 미국캘리포니아에서 처음으로 자연사법안(Natural Death Act)이 통과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생전유언이 법제화됐다.
그 후 잇따라 미국 전체에 파급돼, 현재 50개주와 수도워싱턴에서 생전유언이 법제화됐으며, 그에 따른 연명치료 중단이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만일 생전유언이 없을 경우는 첨부한 지도<그림>에서 보듯, 대다수 주(지도의 붉은 색)에서는 환자의 배우자에게 결정권을 주고 있으며,
3개주(곤색)는 배우자와 부모에게 동등한 권한을 주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생전유언에 관한 정책은 각주마다 제각각 정하고 있으나,
1991년 연방의회에서 법제화한 환자자결법안(Patient Self-Determination Act)을 지켜야만 한다.
이 법안은 메디케어(노인보험)와 메디케이드(빈민보험) 등 연방정부의 공공의료보험혜택을 받고 있는 병원기관(실질적으로 모든 병원과 양로원과 재활원 등)에게,
임종·케어를 포함한 치료의 선택권과 결정권이 환자자신에 있다는 것과 생전유언준비를 모든 입원환자에게 통고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의료시설인정 합동조사위원회(JCAHO)에서도 인준 받은 모든 병원기관은 환자차트에 임종시 'Do Not Resuscitate\'(소생술을 시행 않음) 여부를 반드시 기재하도록 했다.
환자자결법안과 JCAHO 규제에 따라 입원환자는 자동적으로 의료지시(Advance Directive)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80%는 생전유언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나, 실제로 이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전체인구의 15~20%(65세 이상 노인은 55%)에 불과하다.
미국의사회(AMA)와 정부는 모든 일반국민에게 평소 의료지시를 갖추도록 적극 권유하고 있으며,
여기에 의사들의 역할이 크게 기대되고 있다. 환자에게 존엄사와 의료지시 등 막연한 용어를 더욱 자세히 설명해 주고 주지시켜야 하며,
모든 환자가 종말에 가서 존엄성을 갖고 죽을 수 있는 자신의 결정권을 행사하게 도와주는 일이 의사의 의무다.
유럽에서는 1979년 서독의 의사회에서 \'소극적 안락사 가이드라인 발표\'가 시발점이 되어, 현재 전 유럽에서는 존엄사가 법적 또는 관례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2000년 11월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법이 법제화됐을 당시, 교황청과 더불어 가장 먼저 반대성명을 낸 나라가 서독정부다.
과거 독일의 '나치 안락사'의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존엄사가 유럽과 미국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전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배경은 '보람 있는 삶\'(QOL)을 강조했던 고대 로마 희랍사람의 사상과,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인위적으로 연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기독교 종교관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계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 할 가톨릭 로마 교황청은 1980년 5월 5일 '안락사에 관한 선언문(Declaration on Euthanasia)\'을 발표하고,
치료 불가능한 환자에의 치료중단을 인정했다.
이 선언문은 서론과 결론이외에 ▲인간생명의 가치 ▲안락사 ▲기독교인에게 수난(고통)의 의미와 진통제 사용 문제
▲의료시행의 정당한 부분(Due Proportion in the use of Remedies)의 4부로 돼 있다.
제4부 존엄사에 관한 해설에는 "모든 치료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죽음이 임박했을 때는…무익하고 부담스러운 연명만을 위한 치료를 양심에 의해서 거부하는 결정이 허용된다.
이러한 경우 의사들은 환자를 돕지 못한다고 뉘우칠 이유가 없다\"고 정리했다.
이러한 교황청 성명 내용은 하루아침에 작성한 글이 아니며,
죽음과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존엄성 문제에 대해 몇 십 년 간 성경을 연구하고 조사한 사려 깊은 교시다.
미국 개신교에서도 오래 전부터 존엄사를 지지해 왔다.
1983년 개신교의 중도파인 Lutheran Church in America에서는 생명종말결정에 관한 메시지(A Message on End-of-Life-Decision)를 발표했다.
생명종말결정의 결론은 "의학치료는 경우에 따라 제한될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한 죽음은 허용된다…
치료에 있어서 판단능력이 있는 환자자신의 결정권이 가장 중요하며, 의사가 추천하는 치료라 할지라도 치료효과보다
위험이 더 크다고 믿을 경우는 치료거부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연명의료에 관한 AMA 정책은 다음과 같다.
▲환자는 의료문제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으며, 치료거절결과가 죽음을 의미해도 거절을 할 수 있다
▲연명의료시행은 의학적 혜택을 동반해야 하며, 환자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일단 시작된 의료라 할지도 환자의 요구가 있으면 중단할 일이다.
환자를 대신해서 환자대리인(배우자 등)이나 법원결정으로도 치료중단을 요구할 수 있다
▲환자자신이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없는 상태에서 생전유언이나 의료지시가 없을 때는, 환자의 바라는 바에 대한 논의가 생길 것이다.
이럴 경우는 항상 환자의 권리와 존엄성을 우선해서 결정해야 한다.
세계의사회(WMA)는 2003년 9월 헬싱키총회에서 제정한 '생전유서'에 관한 성명에서 \"환자가 정당하게 작성한 의료지시(Advance Directive)는 존중되어야 한다.
의료지시가 없을 경우, 의사는 자신이 환자에게 최선이라고 믿는 의료를 제공해야 한다" 등을 권고했다.
이상과 같이 미국과 유럽 등 선진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존엄사(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가 허용되고 있다.
일본의 존엄사
존엄사란 말은 미국의 'Death with Dignity'와는 뜻이 다르고 따라서 영어번역이 아니며, '연명치료 중단'을 뜻하는 일본어 조어이다.
1976년 '일본안락사협회'가 발족되었으나 실제 그들이 추진하는 운동이 '연명 치료의 중단'이므로, 1983년에 '일본존엄사협회'로 개칭했다.
그리고 1992년 일본의사협회에서 정식으로 존엄사를 인정했으며, 협회조사에 의하면 의사들의 94%가 존엄사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학술인의 모임 '일본학술회의'에서도 1994년 존엄사 허용에 대해 합의했다.
2007년에 들어와서 존엄사의 법제화를 시도하는 일본존엄사협회는 그들 연구팀의 보고서를 작성한바 있는데, 그 가운데 치료중지요건으로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중지할 의사가 있다 ▲2명의 의사의견이 일치한다 ▲존엄스런 생의 확보와 고통제거를 목적으로 한다 등 3가지를 명시했다.
원래 일본인의 바람직한 죽음은 불교(그들 전통종교)의 젠(Zen, 禪)에서 말하는 \'자연사\'이지만, 실제로 대다수 일본인은 다른 선진국인과 다름없이 병원에서 죽는다.
그러나 요미우리신문에 의하면 약 50%는 집에서 죽기를 원하고 있다.
2006년 일본 가톨릭협의회 대변인은 "안락사는 인정할 수 없으나, 과도한 연명 조치 거절은 허용한다"고 했으며,
기독교단 총회장은 "성서에서 적극적 안락사는 인정치 않고 있는 반면, 임종을 인위적으로 연장시키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자연사에 맡기는 일이 결코 하나님 율법에 배반되지 않으며, 환자의 사전지시는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종말환자에게 존엄사를 인정하고자 하는 일본의 초당파 국회의원들 모임인 '존엄사 법제화를 위한 의원연맹'은 2007년 6월 7일 '존엄사 법안요안\'을 공표했다.
내용은 존엄사협회 것과 대동소이나, 의식불명환자는 대상에서 제하며 의식 있는 환자도 본인의사와 함께 가족의 동의를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치료중지에 관여한 의사는 반드시 서면기록을 남겨야 할 의무가 있으며, 만일 위반했을 경우는 50만 원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최근 일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종말의료\' 사건들은 모두가 안락사와 관련된 사건이고, 존엄사는 일본사회에서 관례적으로 허용된 것이나 다름없다.\r\n==============================\r\n책 : 죽음, 삶이 존재하는 방식 [저 자 : 오진탁 ](청림출판)\r\n\r\n누군든지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나의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죽음은 내 삶의 거울이다.
1. 개 요<1>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 자기가 선택한다!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두려움 속에서 죽어 갈 수도 있고,
밝은 표정으로 작별 인사를 나눌 수도 있다. 죽음은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에, “왜 나만 죽어야 하는가?”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도 있고, “왜 나라고 죽어서는 안되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이 죽어 가는 마지막 모습 역시 크게 다를 것이다.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는 우리 자신이 정할 수 있다.
두려운 현상으로 확정되어 있지 않은 죽음을 어떤 사람이 불안과 공포 속에서 맞이했다면, 그렇게 죽어가도록 선택한 것은 누구이겠는가.
또 어떤 사람이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죽음을 맞이할 때, 자기 자신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는 누가 죽음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겠는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 바로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2> 올바르게 살아야 죽음을 평온하게 맞이할 수 있다!우리는 때때로 ‘죽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한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선 먼저 우리의 습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부정적이든, 혹은 긍정적이든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면
이 습관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쉽게 유발되고, 더 한층 증진되며,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렇게 반복됨으로써 습관은 점점 더 견고하게 우리 안에 자리잡을 것이고, 심지어 잠잘 때에도 계속해서 그 힘을 키워갈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삶과 죽음도 결정된다. 결국 죽은 후에도 지금 우리의 마음 상태 그대로 유지되며,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삶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죽음의 순간에, 죽음 이후에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런 까닭으로 지금의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마음의 흐름을 정화하고 우리 자신과 그 성격을 뜯어고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결국 모든 것은 지금, 바로 이 순간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죽음을 체험했던 사람들 역시 죽음의 순간, 저마다의 삶이 눈앞에서 다시 재현되었으며 다음의 질문에 맞닥뜨렸다고 증언한다. ‘당신은 자신의 삶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 좋든 싫든 죽는 그 순간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따라서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은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달라이 라마도 이런 맥락에서 다음같이 말한다.“사람들은 평화롭게 죽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폭력으로 가득 차 있거나 성냄, 집착, 공포 같은 감정으로 크게 혼란스럽다면, 평화롭게 죽을 수 없음 또한 자명한 일입니다. 따라서 죽음을 평온하게 맞이하고자 한다면 올바르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평화로운 죽음을 희망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평화를 일구어야 합니다.”<3> 죽음 준비는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이제 죽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하기보다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기 자신에게 되물어야 한다. 올바르게 살아야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 준비는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다시 말해 삶을 이치에 맞게 살아보기 위해 임박해 있는 죽음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죽음의 철학은 삶의 철학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죽음 준비를 하지 않고서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삶을 이치에 맞게 살지 않고서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을까.우리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죽음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런 죽음의 임박성을 의식한다면 우리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동안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지’ 자기 자신에게 되묻게 되고 우리의 삶을 하찮은 활동과 사소한 관심거리로 가득 채우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아주 늦게, 실제로 자신이 죽어 가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하고 지나간 삶을 후회하면서 죽음을 맞고 있다.
죽을 때 엄청난 후회를 하기보다 죽음이 찾아오기 이전에 평소 자신의 삶 속에서 죽음의 임박성을 생각함으로써 현재의 삶을 보다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죽음에 대해 항상 유념하면서 삶을 산다는 것은 의미 없는 활동으로부터 벗어나 더 중요한 일을 가려내고, 보다 의미 있는 일로 삶의 시간을 채우도록 이끌게 한다.
죽음의 임박성과 함께 삶을 조용히 돌아본다면 우리의 삶은 보다 순화될 수 있다.
결국 죽음 준비란 자기의 삶을 제대로 영위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라는 말이다.
또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도록 평소에 준비해 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4>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은?(우리는 병원에서 죽어가야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이런 저런 의료기계에 어쩔 수 없이 둘러싸인 채
여러 가지 튜브를 몸에 꽂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50대, 60대에 자연사했을 사람들이 위암, 당뇨병, 뇌졸중, 치매 등의 병을 지닌 채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머지 않아 죽을 것을 알면서도 작별의 말을 할 겨를도 없이 심장마사지 등의 응급조치를 취하기 위해 가족들은 병실 밖으로 쫒겨나게 된다.
의료 관계자는 오직 육체적 연명만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원인으로 죽어 가는 환자라도 응급실에서 ABC 조치를 취하면 어느 정도 생명을 붙들어 놓을 수 있다.
그래서 현대 의학을 ‘사람을 죽지 못하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보다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해주려는 환자의 가족들은
이것이 과연 인간다운 죽음의 방식일까라는 의문을 자주 제기한다.
환자의 죽는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의료 관계자가 죽음에 대한 적절한 교육을 받았는지, 또 스스로 자기 자신의 죽음이나,
죽어 가는 환자를 돌보는 방식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책임감에 휩싸였을 때, 만일 회복될 희망이 조금도 없는 경우라면
그런 식으로 난리를 피우면서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도록 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또는 최후의 시간을 좀더 의미 있게 보내게 하는 편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하버드대 교수와 주일 미국대사를 역임한 에드윈 라이샤워는 1990년 9월 미국의 한 병원에서 죽었는데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맞이한 모범적인 사례였다.
그는 그 무렵 가족에게 “치유가 불가능한 경우 인위적인 생명연장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병세가 위독해진 어느 날, 그는 가족과 친지에게 이별을 고하고 의사에게 생명연장을 위한 의료기기를 떼어내라고 요구했다.
이윽고 그는 의식을 잃었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자신의 생사관을 분명하게 실천한 그의 죽음은 깊은 감명을 주었다.
암으로 투병하던 재클린 케네디 여사도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하면서 일체의 의료 행위를 거부했고 자신의 뜻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적극적 안락사는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소극적 안락사는 인위적 연명조치를 중단하거나 처음부터 사용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극적 안락사는 자연사와 거의 흡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자연사했을 사람이 현대 의학의 발달로 인해 억지로 연명하는 사례가 많지만 라이샤워와 재클린은 존엄한 죽음의 길을 택한 것이다.
<5> 유서 쓰기 운동-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으므로,
그런 돌연한 죽음에 대비하기 위해 자기가 원하는,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을 미리 가족과 협의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유서 형식으로 문서화 해두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유서만 써두자는 말이 아니라, 유서를 작성함으로써 자기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도 되돌아보고 품위 있는 삶,
인간다운 죽음을 지향하기 위한 결의를 하자는 것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생전유서 ,
다시 말해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를 작성해 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 일본의 경우 2002년 6월까지 10만여 명 정도가
<존엄한 죽음을 실천하는 모임>의 회원으로 가입했다.
또한 미국, 일본만이 아니라 호주,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캐나다, 스코틀랜드 등의 관계자들은
인간의 존엄한 죽음에 관해 국제회의를 10여 차례째 열고 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언서의 내용은 세계적으로 거의 같은 내용이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저는 제가 병에 걸려 치료가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할 경우를 대비하여 저의 가족, 친척, 그리고 저의 치료를 맡고 있는 분들께
다음 같은 저의 희망을 밝혀 두고자 합니다.
이 선언서는 저의 정신이 아직 온전한 상태에 있을 때 적어 놓은 것입니다.
따라서 저의 정신이 온전할 때에는 이 선언서를 파기할 수도 있겠지만, 철회하겠다는 문서를 재차 작성하지 않는 한 유효합니다.
*저의 병이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고 곧 죽음이 임박하리라는 진단을 받은 경우, 죽는 시간을 뒤로 미루기 위한 연명조치는 일체 거부합니다.
*다만, 그런 경우 저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는 최대한 취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로 인해, 예를 들어 마약 등의 부작용으로 죽음을 일찍 맞는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몇 개월 이상 이른바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을 때는 생명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연명조치를 중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저의 선언서를 통해 제가 바라는 사항을 충실하게 실행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저의 요청에 따라 진행된 모든 행위의 책임은 저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pp33~36)
<6> 죽음과 삶의 문제를 강의하는 철학교수 오진탁! 오진탁 교수의 연구실에는 죽음과 관련된 책이 사방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또한 학생들의 레포트 과제물 역시 ‘죽음’에 대한 것들이다.
예컨대,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지, ‘죽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등이 과제물이다.
한국 사회에 생사학(生死學)을 이처럼 집중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기존 출간되어 있는 죽음관련 책들만 보아도, 단순한 철학적 접근이나 감성적 수필, 또는 번역서들이 나와 있는 수준이다.
이 책은 생사학의 전문가인 오교수의 첫 집필 책으로 안락사, 낙태, 자살, 사형수 등 단순한 죽음의 의미만을 쫒는 책이 아니라
다양한 죽음 사례를 제시하면서 죽음 준비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2004년 오진탁 교수의 계획은 ‘죽음 준비 교육’의 활성화에 있다.
2003년 여기저기서 일어난 ‘자살’ 문제를 보면서 그 필요성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
올초 사회단체를 통해 ‘유언장 쓰기’ 운동을 통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2. 머리말 중에서우리는 때때로 ‘죽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한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선 먼저 우리의 습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부정적이든, 혹은 긍정적이든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면 이 습관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쉽게 유발되고,
더 한층 증진되며,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렇게 반복됨으로써 습관은 점점 더 견고하게 우리 안에 자리잡을 것이고,
심지어 잠잘 때에도 계속해서 그 힘을 키워갈 것이다.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삶과 죽음도 결정된다.
결국 죽은 후에도 지금 우리의 마음 상태 그대로 유지되며,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삶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죽음의 순간에, 죽음 이후에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런 까닭으로 지금의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마음의 흐름을 정화하고 우리 자신과 그 성격을 뜯어고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결국 모든 것은 지금, 바로 이 순간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죽음을 체험했던 사람들 역시 죽음의 순간, 저마다의 삶이 눈앞에서 다시 재현되었으며 다음의 질문에 맞닥뜨렸다고 증언한다.
‘당신은 자신의 삶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
좋든 싫든 죽는 그 순간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따라서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은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3. 본문 중에서현대 사회에서 죽어 가는 사람에게 대다수가 표하는 유일한 관심이란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뿐이다.
가장 상처받기 쉬운 바로 그 순간 세상 사람들은 거의 아무런 보살핌이라든가 통찰력도 제시받지 못하고 내팽개져지는 것이다. …
죽어 가는 사람을 돕는 일은 마치 쓰러진 사람에게 손을 뻗어 그를 일으켜 세우는 것과 같아서 우리의 힘, 평화, 자비로 그에게 관심을 표함으로써,
그가 자신의 힘을 일깨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이고 상처받기 쉬운 순간에 우리가 어떤 자세로 죽어 가는 이에게 임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p26)호스피스 자원 봉사자들이 보살피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세상을 저주하는 환자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는 일이 많다.
그러나 묵묵히 그들을 진심으로 대하면 그들은 점점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환자들이 괴로워 할 때 자원 봉사자도 함께 슬프게 되지만,
이런 자원 봉사를 통해 환자에게 준 것보다 자원 봉사자들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임종이 다가올수록 지난 일을 뉘우치게 되는 말기환자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게 되는 봉사자의 마음 역시 정화된다.
이런 봉사 활동을 통해 호스피스 봉사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그 시간이 얼마나 고귀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고 한다.
(p88)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임신 중절 수술 이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혼이 함께 결합해 있는 태아의 몸이 찢겨질 때, 태아의 영혼은 무엇을 느낄까. 영혼이 실렸던 태아의 몸이 죽임을 당한 이후,
영혼이 가야할 곳은 어디일까. 가야할 곳이 있기나 할까. 태아의 영혼은 원한을 품은 채 어둠 속을 헤매게 된다.
(pp101~102)자살을 하면 단지 상태가 변화될 뿐 결코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수 없다.
어려운 처지로부터 벗어나려는 생각에 자살을 감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자살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닥쳤던 어려움으로부터 결코 달아날 수 없다. … 단지 막연하게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에,
혹은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기대로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며 자살행위로 인해 부정적인 행위만 더 늘어나게 된다.
자살하는 사람은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죽을 준비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살한 이후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모른 채 자살을 감행한다.
(pp139~140)이제 우리나라도 사형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사형이라는, 또 다른 살인을 반복하기보다 종신형을 통해 흉악범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최소한의 생명권을 보장해 주면서, 교화를 통한 반성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한 인간을 사형에 처한다는 것은 중대한 행위입니다.
사형은 간단히 말해 한 인간을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의 그 사람이 개과천선하기 위해서는 삶을 계속 유지하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p177)데레사 수녀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무엇일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죽음은 고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으면 어떻게 될지 두려워 하기 때문에 죽기 싫어합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안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어 가는 사람은 ‘좀 더 좋은 일을 했어야 하는데…’라는 식의 자책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죽어 가는 사례를 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삶의 계속이고 완성입니다.
죽음이란 육신의 죽음일 뿐이지 영혼은 계속 유지됩니다. 사람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종교마다 내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현세가 마지막이라 믿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은 고향으로 하느님을 찾아가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올바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p193)
안락사?
2.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오진탁 철학박사
소극적 안락사의 두 번째 대안으로 리빙윌(Living Will),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을 제시한 바 있다.
적극적 안락사뿐만 아니라 소극적 안락사 역시 논란의 소지가 많이 있지만, 리빙윌을 토대로 하는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와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50개 주 가운데 49개 주에서 건강할 때 존엄한 죽음을 원한다는 의사표시를 해두는 리빙윌을 이미 법제화했다.
알폰스 데켄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궁리 106, 107쪽 최근 일본에서도 존엄한 죽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존엄한 죽음을 실천하기 위해 리빙윌에 서명해 두었다가, 의료기관에서 치료받게 되는 경우, 이 선언서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실행되고 있다.
일본 후생성(厚生省)에서 98년 6월 말기의료를 집중 검토한 결과 리빙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고,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 자신의 의사를 중시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에 따라 품위 있는 죽음을 원하는 환자의 뜻은 대부분 수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미국, 일본만이 아니라 호주,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캐나다, 스코틀랜드 등의 관계자들이 모여 인간의 존엄한 죽음에 관해 국제회의를 10여 차례 열고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으므로, 죽음에 대비하기 위해 자기가 원하는 죽음의 방식을 미리 가족과 협의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유서형식으로 문서화 해두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유서만 써두자는 말이 아니라,
리빙윌에 서명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삶을 되새겨보면서 인간다운 삶과 품위 있는 죽음맞이는 어떠해야 하는지 깊이 성찰해보고,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함으로써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겠다는 결심을 하자는 뜻.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의 내용은 “첨부1”과 같다.
얼마 전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유료양로원에서 ‘죽음준비’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노인들은 평균 연령이 80세였으므로, 죽음이 바로 눈앞에 닥친 현실이었다. 노인들을 상대로 조심스럽게 “죽음은 절망이 아니다,
죽을 때 자기 자신의 값어치가 남김없이 드러난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밝은 모습으로 죽을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하자”는 취지로 1시간 넘게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소극적 안락사의 대안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전환, 호스피스 제도의 활성화와 함께 리빙윌을 제시했더니, 이구동성으로 찬성의 뜻을 표했다.
소극적 안락사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서,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 노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사나 변호사에게 물어보는 등 고민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존엄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귀가 번쩍 뜨였던 것이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의 내용이 바로 자신들이 원하던 내용이라는 것이다.
소극적 안락사의 대안으로서 리빙윌은 바람직한 죽음의 방식이라고 본다.
평소에 건강할 때 리빙윌에 서명해두고 자기의사를 가족에게도 분명하게 알려 놓는다면, 갑자기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본인이나 가족이 담당의사에게 관련서류를 제시할 경우, 당사자의 뜻이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사전의료 지시서
‘사전의료지지서’ 란 우리가 사고를 당했거나 불치의 병에 걸려 의식 불명이 됐을 때를 대비해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의료진에게 자기가 원하는 치료와, 그렇지 않는 치료를 미리 밝혀두는 것이다. 의식 불명상태가 되었을 때
연명치료가 의미가 없을 경우라 해도,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법적으로 치료를 중단할 수가 없다.
그때를 대비해서 본인이 원하는 사항과 원하지 않는 사항을 미리 적어 놓은 것 이다.
이 서류를 공증 받아 놓아야 하는 이유는 이 서류가 본인의 것이라는 것이 증명되어야 법적 기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첨부2: 사전의료 지시서 참조)
■ 안락사와 존엄사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 두 가지를 서로 혼동하거나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두 사안은 일부 유사한 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엄연히 다른 죽음 방식이다.
공통점은 생명이 죽는 것을 억지로 막는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것 뿐이지만, 차이점은 많은 것이다.
< 차이점 >
(1)행위와 판단의 주체
소극적 안락사가 법으로 합법화 될 경우, 소극적 안락사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판단의 주체는 당연히 의료인이다.법으로 보장되었으므로
의사는 소극적 안락사를 행한 권리를 지닌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당사자와 가족, 혹은 당사자와 의료인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당사자가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인 또는 가족의 뜻에 따라 죽게 되는 상황도 야기될 수 있다.
하지만, 존엄사의 경우, 행위와 판단의 주체는 의료인이 아니라 당연히 죽어가는 당사자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병의 진행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자기 생명을 자기 자신이 주체적으로 판단하느냐 아니면 의사 혹은 가족이 결정하느냐 하는 판단 주체의 차이, 또 의사가 판단의 주체가 되느냐
혹은 병의 진행과정을 알려주는 역할만 하느냐 하는 의사 역할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2)죽음관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 당사자는 평소 죽음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죽음 준비나 생사관도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별 탈 없이 살아가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소극적 안락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여부를 고민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뿐이다.
단지 의사가 주어진 상황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어 소극적 안락사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리빙 윌에 미리 서명해둘 정도의 사람이라면 평소 죽음에 관심을 갖고서 죽음을 자기 삶의 일부로 수용하고 준비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어느 정도 뚜렷한 생사 관을 정립하고서 존엄사의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럴 경우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와 비교되는 생사 관의 차이는 더 말할 나위 없이 크다.
(3)삶의 태도
갑자기 소극적 안락사의 여부에 직면한 사람은 죽음에 대해 평소 심사숙고 하지 않았듯이,
삶의 방식에 대해 또 삶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리빙 윌에 서명한 사람은 죽음의 수용과 준비를 통해 자기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을 되새기면서,
제한된 삶의 시간을 보다 의미 있게 사는 방식을 모색한다. 이처럼 두 사안은 삶의방식 측면에서 서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4)죽음의 방식
소극적 안락사 문제에 봉착한 사람은 죽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다가 예기치 않게, 어쩔 수 없이 죽음에 직면해 떠밀려가듯이 소극적 안락사를 선택하게 된다.
당사자의 의사는 전적으로 무시되는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리빙 윌에 서명한 사람은 자기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 즉 존엄사를 평소 건강할 때 능동적으로 결정해놓는다.
어느 날 죽음이 찾아와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아무런 흔들림 없이 평소에 준비한 대로 밝은 모습으로 죽음에 임하게 된다.
따라서, 죽음의 방식 역시 양자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5)리빙 윌과 사전의료지시서
소극적 안락사 문제에 직면한 사람은 평소에 ‘리빙 윌’사전의료지시서’ 제도가 있는지, 리빙 윌 혹은 존엄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삶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나 죽음을 평소에 준비해야 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존엄사에 뜻을 둔 사람은 리빙 윌에 서명함으로써 삶과 죽음에 대해,
또 자기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 역시 평소에 깊이 성찰하며 인생에 더욱 충실하며 살게 된다.
(6)작별인사
소극적 안락사 여부에 직면한 사람은 갑작스럽게 작별인사를 하게 되고, 심지어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지도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죽는 사례를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리빙 윌에 미리 서명해둔 사람은 마치 미리 준비해두었다는 듯이 가족을 향해 편안하게 마지막 말을 던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마지막 작별의 방식 역시 양자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난다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는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임종 방식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난다.
총괄적으로 볼 때, 소극적 안락사는 소극적, 수동적, 부정적, 어두운 이미지라고 한다면, 존엄사는 적극적, 능동적, 긍정적, 밝은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차이는 결국 죽음의 방식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 나아가 죽음 이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연명치료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는 소극적 안락사의 합법화보다는, 리빙 윌 등에 서명하는 것을 계기로 해서 죽음의 방식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까지 심사숙고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사화적으로도 바람직하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첨부 1.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
제가 병에 걸려 치료가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할 경우를 대비하여 저의 가족, 친척,
그리고 저의 치료를 맡고 있는 분들께 다음과 같은 저의 희망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선언서는 저의 정신이 아직 온전한 상태에 있을 때 적어 놓은 것입니다.
따라서 저의 정신이 온전할 때에는 이 선언서를 파기할 수도 있겠지만,철회하겠다는 문서를 재차 작성하지 않는 한 유효합니다.
(1)저의 병이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고 곧 죽음이 임박하리라는 진단을 받은 경우, 죽는 시간을 뒤로 미루기 위한 연명조치는 일체 거부합니다.
(2)다만 그런 경우 저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는 최대한 취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죽음을
일찍 맞는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는 생명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연명조치를 중단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저의 선언서를 통해 제가 바라는 사항을 충실하게 실행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저의 요청에 따라 진행된 모든 행위의 책임은 저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본인 성명, 가족 성명, 공증인 성명
첨부 2. 사 전 의 료 지 시 서
제가 스스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경우를 대비 해서, 담당 의사와 가족들에게 다음과 같은 ‘
사전의료지지서’를 문서로 작성합니다.
저의 소망대로 실행해주기를 바랍니다.
(1)제가 의식이 없어지더라도, 기도 삽관이나 기관지 절개술 및 인공 기계 호흡치료법은 시행하지 말 것.
(2)제게 ‘항암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판단이 있더라도 항암 치료는 시행하지 말 것.
(항암치료의 효과를 불신해서가 아니라 저의 연령과 체력의 한계 때문)
(3)그 외 인공영양법, 혈액투석, 더 침습적인 치료술도 시행하지 말 것.
(4)탈수와 혈압유지를 위한 수액요법과 통증관리 및 생리기능유지를 위한 완화의료는 치료받기를 바라며,
임종 시 혈압 상승제나 심폐 소생술은 시행하지 말 것.
(5)그외 여기에 기술되지 않은 의료 내용은 대한 의학회에서 공포하고 있는 최근의 임종환자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의료지침’에 따라
결정 하기를 바랍니다.
사전의료지시서를 통해 제가 바라는 사항을 충실하게 실행 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저의 요청에 따라 진행된 모든행위의 책임은 저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월 일 본 인 성명 공증인 성명
유서와 유언장의 차이?
유서ㆍ유언장 모두 "유언을 적은 글"이라는 뜻으로 쓰는 말로 의미상의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민법상에는 유서나 유언장이 아니라 "유언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서나 유언장의 유언이 법률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법이 정하는 방식을 따라야만 하는데, 민법에는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5종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엄격한 방식을 요구하는 것은 유언자가 사망한 후에는 그의 진의를 확인할 기회가 없고 효력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유언의 방식 자필증서 고인이 생전에 자필(自筆)로 유언의 내용과 날짜, 주소, 성명을 쓰고 날인(捺印)해야한다. 만일 고쳐야 할 사항이 있을 때에는
내용을 별도로 쓰고 날인해야하며 남에게 대신 쓰게하거나 타자(打字)를 친 것은 인정받지 못한다.
날짜, 주소 등이 누락되어도 유언의 효력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녹음 녹음(錄音)을 해두는 방법이다.
유언하는 사람이 유언의 내용과 이름, 녹음날짜를 밝혀 녹음하고, 증인을 불러 유언의 정확함을 확인(確認)시킨 다음에 증인의 성명을 녹음해야한다.
공정증서 공정증서에 의한 방법이다.
증인 두 사람이 참석한 가운데 공증인(公證人)이 지켜보는 앞에서 유언의 내용을 말하고 공증인으로 하여금 이를 기록(記錄)하고 낭독하게한다.
그러면 유언자와 증인은 유언의 내용이 정확하면 승인하고 각각 서명 또는 기명하고 날인하여 공증한다.
비밀증서 유언하는 사람이 자신의 성명을 기입한 유언서를 만들어 봉투에 넣고 봉인(封印)한 다음 두 사람 이상의 증인에게 제출한다.
그러면 봉투 표면에 유언인과 증인이 각각 서명 또는 기명 날인하고 증인에게 제출한 날짜를 쓴 다음 5일 안에 공증인이나 법원(法院)의 서기(書記)에게 제출하면
봉인 위에다 제출한 날짜를 찍는다.
구수증서(口授證書) 생전에 유언장을 만들지 못하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 유언을 하려면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언을 한다.
그러면 증인 한 사람이 유언을 기록하고 낭독하며 사실과 틀림없음을 인정한 후에 각각 서명 날인한다.
이 경우에는 증인이나 이해 관계자가 절박한 사유가 소멸(消滅)된 날로부터 일주일 안에 가정법원에 검인신청(檢認申請)을 해야한다 [이 게시물은 …님에 의해 2017-06-08 20:28:1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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