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0-0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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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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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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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의 고향-미륵의 고향 파르티아
3세기 중반부터 기원후 7세기 중반에 걸쳐 서아시아에는 파르티아와 사산조라는 2개의 페르시아인의
대제국이 성립되어 메소포타미아 지배권을 둘러싸고 로마제국과 격렬한 싸움을 되풀이했다.
파르티아는 카스피해 남쪽의 유목민족인 페르시아인이 서아시아의 농경사회를 정복하여 세운 국가였다.
(기원전 3세기 중반~기원후 3세기 초).
그래서 서아시아에서는 외부에서 침입한 정복 왕조로 여기고 있다.
그때까지 말에게 신기던 '짚신'을 대신해 편자를 발명한 파르타인이 세운 왕조는 전형적인 기마민족 국가였다.
파르티아 는 군사적으로 강대해 로마 제국과의 싸움에서 종종 승리를 거두웠다.
또한 중국의 한(漢)제국과 로마 제국의 중간에 위치하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
비단 매매를 중심으로 하는 중계무역으로 큰 이익을 얻었다.
파르티아의 신앙인 태양신 '미트라' 를 숭배하는 미트라교는 동.서 세계로 전해졌다.
로마 제국에서는 민중들 사이에 군신 미트라의 신앙이 퍼져나가 그리스도교와 대등한 큰 종교가 되었다.
동방에서는 불교와 융합해 미트라는 미래불인 미륵(彌勒)이 되었다.
미륵은 당 제국과 신라, 아스카(飛鳥) 시대의 일본에서 많이 믿었다.
파르티아는 다수의 민족을 통합할 필요가 있었기에 종교적으로 관대한 정책을 폈다.
그러나 30명의 왕 중 5명의 이름이 '미트라다테스'(미트라에게 수여된 자라는 뜻)라는 점에서 알수있듯이
신 미트라에 대한 믿음은 대단했다.
미트라는 태양신, 계약 혹은 정의와 우정의 신, 군신을 말한다.
전해내려오는 얘기로는 엘브르즈 산에 미트라가 살았는데 그곳은 낮과 밤이 구별이 없고 질병과 죽음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다.
미트라 신앙은 교역과 전쟁, 이주등으로 동서로 전해졌다.
서방 로마 제국에는 파르티아와의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민자와 상인들을 매개로 미트라 신앙이 퍼져갔다.
로마 제국에서 미트라는 태양신 또는 군신으로 신도들을 모았고 그리스도교에 이어 제2의 종교가 되었을 정도였다.
최대 규모로 그리스도교도들을 박해한 것으로 유명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307년에 미트라를 황제의 수호신으로 정했다.
그는 미트라의 원광(머리 위에서 뿜어 나오는 둥근 빛)으로 머리를 감싸 육체를 성화했다.
동방에서는 대승불교 속에 미트라 신앙이 미륵신앙으로 도입되어 원광은 광배(光背)로 불상 조각에 사용되었다.
미륵은 불법이 잊혀진 다음에 도솔천에서 내려와 불법을 전하는 '미래불'로 자리 잡았다.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52P)에서..) [이 게시물은 …님에 의해 2017-06-08 20:28:1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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