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4-15 22:05
시 - 봄날은 갔네 / 박남준
 글쓴이 : …
조회 : 275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또 저렇게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 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버림받고 홀로 사는
한 사내가 햇살 속에 주저앉아 중얼거린다

십리벚꽃 길이라던가 지리산 화개골짜기 쌍계사 가는 길
벚꽃이 피어 꽃 사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나는 꽃들
먼저 왔으니 먼저 가는가
이승을 건넌 꽃들이 바람에 나풀 날린다
꽃길을 걸으며 중얼거려본다
뭐야 꽃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 대궐이라더니
사람들과 뽕짝거리며 출렁이는 관광버스와
쩔그럭 짤그락 엿장수와 추억의 뻥튀기와 뻔데기와
동동주와 실연처럼 쓰디쓴
단숨에 병나발의 빈 소주병과
우리나라 사람들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그래 그래 저렇게 꽃구경을 하겠다고
간밤을 설렜을 것이다
새벽차는 달렸을 것이다

연둣빛 왕버드나무 머리 감는 섬진강 가
잔물결마저 눈부시구나
언젠가 이 강가에 나와 하염없던 날이 있었다
흰빛과 분홍빛 붉고 노란 봄날
잔인하구나
누가 나를 부르기는 하는 것이냐

- 시집《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